나태한 조선인, 화목한 일본인…14×9㎝ 엽서에 담긴 ‘식민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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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0-21 09:07
업데이트 2022-10-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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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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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시선이 담긴 사진엽서 속에서 여성은 가부장제의 희생자이거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남성은 나태한 존재로 묘사됐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일제 사진엽서, 시와 이미지의 문화정치학│ 최현식 지음│성균관대학교출판부

사진·詩 어우러진 ‘꽃’이자
통치 위한 프로파간다용 ‘칼’

식민지 풍경의 낙후성 강조
조선인을 고용자처럼 표현도
일제의 ‘우쭐한 심상’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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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는 ‘제국=문명과 진보, 식민지=야만과 미개’라는 폭력적 프로파간다로 조선을 지배했다.”

이 문장 자체는 새로울 게 없다.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부 극우 세력을 제외하면 모든 세계인이 공유하는 역사 인식이니 말이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인 최현식 인하대 교수의 책은 ‘사진엽서’라는 독특하고 구체적인 사물에 주목해 식민지 시대 통치 전략을 새롭게 조명한다. 조선총독부 소속 기관과 일제 관리·감독을 받는 민간 업자들이 유통한 엽서는 사진과 그림, 시(詩)가 어우러진 ‘꽃’이자 ‘칼’이었다. 꽃처럼 아름다운 풍광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피사체가 담긴 예술품이지만, 그 안에는 ‘조선적인 것’을 조롱하고 ‘일본적인 것’을 자찬하는 변형된 오리엔탈리즘의 칼이 숨겨져 있었다. 거리를 나도는 ‘14㎝ × 9㎝’ 규격의 사각 프레임에도 조선인의 언어와 풍습을 말살한 ‘우승열패’의 논리가 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는 사진엽서를 프로파간다 도구로 활용하는 전략을 서구로부터 배웠다. 19세기 후반 일본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 열도를 ‘열등하고 거친 땅’으로 간주했다. 그들이 제작한 엽서엔 일본의 야생적 풍광과 궁핍한 생활이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었다. 일제는 수십 년 앞서 서구 열강이 자국을 ‘문명화’로 유인하기 위해 취한 계몽적 시선을 ‘뒤처진 조선’에 그대로 투사하고 재현했다. 밀봉된 편지와 달리 ‘반(半) 개봉’ 형식의 엽서는 송신자와 수신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거리에서, 상점에서 손쉽게 내용을 확인할 수 있기에 선전을 위한 ‘누설의 미디어’로 매우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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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초기엔 조선에 놀러 온 일본 여행객을 위해 발행된 엽서가 많았다. 이들 엽서는 관광지 정보와 함께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인의 생활 양식을 담았다. ‘아기 보기와 창경원 풍경’이라는 엽서를 보자. 상단에는 조선 봉건 권력의 보루를 유원지로 개조한 창경원 사진과 화목한 가정의 벚꽃놀이를 예찬하는 와카(和歌·일본 고유의 시)가 있다. 근대식 ‘스위트홈’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 아래로는 아기를 등에 업은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풍요로운 일상을 만든 일제의 선진 문명과 전근대적 가부장제에 머물러 있는 조선의 궁핍한 생활을 대비시키는 문화·정치학적 기호체계인 셈이다. 다른 많은 엽서에서도 조선 여성은 빨래, 다듬이질, 물 긷기, 김장 등 힘겨운 가사노동을 홀로 떠맡는 존재로 묘사됐다. 집안일 대신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은 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 소비될 뿐이었다. 이에 반해 아무 데서나 낮잠을 자고 술을 마시며 장기를 두는 남성들은 게으름과 나태의 상징이었다. “식민지 풍경의 낙후성과 저열성을 정교하게 배치하는 전략은 통치의 정당성을 역설하려는 천황제의 정치적 욕망과 맞닿아 있었다.”

여행객을 위한 엽서 중에는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일본어 문장(히라가나)과 조선어 발음(가타카나)을 병기한 경우도 많았는데, 여기서 저자는 일제의 파시즘적 언어 정책을 읽어낸다. 엽서에서 대화를 나누는 여행객과 조선인은 ‘방문객-접대인’이 아니라 ‘사용자-고용자’처럼 그려진다. 권위적인 목소리를 지닌 일본 남성이 어설픈 조선어로 정보를 물으면 아이나 여성이 한껏 몸을 낮춰 답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언뜻 일본인의 ‘조선어 학습’을 통해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보이지만, ‘남성-아이·여성’이라는 차별적 발화자를 내세워 궁극적으로 조선어를 일본어의 방언으로 격하시키려는 의도”라고 분석한다.

조선인의 풍습을 이미지화한 초창기 엽서는 점차 근대 문명을 이룩한 일본인의 ‘우쭐한 심상’을 드러내는 형식으로 변모한다. 조선 땅을 가로지르는 철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관부연락선이 낙후한 조선 풍경을 대체했다. 일제가 엽서의 수요자로 삼는 대상 역시 여행객에서 제국 시민과 이등 신민 전체로 확장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정치 슬로건으로 내건 ‘대동아공영’과 함께 총력전 분위기가 달아오른 이후에는 엽서에 군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승전의식을 고취해 한반도 전체를 ‘병영화’하려는 일제의 전략은 전장(戰場)으로 떠나는 군대, 국토를 지키는 수비대를 묘사한 엽서로 구현됐다.

저자가 식민지 시대 관제엽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10여 년 전 진주박물관에서 지저분한 옷을 입은 조선 남성의 얼굴을 마주하고서였다. 조선총독부가 촬영한 사진에서 남성은 조선인의 열등성을 확증하는 우생학의 피사체로 취급되고 있었다. 이후 여러 곳에 흩어진 사료를 모으면서 저자는 20세기 손에서 손으로 건네진 엽서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일제의 야만적 통치를 ‘재확인’하는 것을 넘어 제국의 렌즈 앞에서 무지몽매한 타자로 잊힌 조선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위임을 깨달았다. 저자가 계획하는 후속 연구는 식민권력에 의해 소외된 ‘조선적인 것’들에 환대를 제공하는 작업이다. 아마도 거기엔 제약된 삶 속에서도 끝내 잃지 않은 역동적 생명력을 발견해 원래의 말과 얼굴을 되찾아주려는 학문적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다. 768쪽, 4만 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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