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포즈 향한 다른 시선… 환희와 비극 사이는 멀지 않다

■ 어린이 책

우화│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지음│비룡소

한 사람이 뒷짐을 지고 지평선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독자는 알 수 없다. 기찻길의 선로 전환기에 따라 열차의 종착점이 달라지는 것처럼 어디를 바라보느냐는 인생을, 세계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은 삶이 다른 의미로 움직이는 순간, 역사가 변화할 수 있는 결정적 ‘실마리’를 놓치지 않는다. 그동안 할머니의 반짇고리에서 발견한 백 년 전의 실과 단추, 홀로 남겨진 아이의 옷을 짓는 헝겊 조각,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창문을 만져왔던 작가의 손은 ‘우화’에 이르러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의 아기와 그 아기를 업은 채 철조망을 지나는 어머니의 땀에 젖은 등으로 향한다. 몰입감이 대단한 이 책을 읽고 고개를 들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우리를 둘러싼 어지러운 소식 앞에서 방어적이기만 했던 삶의 태도에 건강한 균열을 일으킨다.

이 책은 그가 만든 최초의 글 없는 그림책이다. 표지에서 지평선일까 짐작했던 직선은 누군가가 작은 배를 타고 오는 망망대해의 수평선이다. 같은 포즈로 다른 맥락 앞에 선 인물들은 충격과 안도, 환희와 비극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걸 알려준다. 간절한 기도와 마법 같은 비눗방울의 기적을 지나 펼쳐지는 네 장면은 존재 전환의 경험을 준다. 마지막 면지에서 다시 펼쳐지는 고요한 수평선은 읽는 사람의 선택을 기다린다.

작가는 유방암 세침 검사를 받는 여인의 아픔과 가뭄으로 갈라진 땅을 딛고 물을 긷는 여인의 아픔을 함께 본다. 개인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이며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를 이어주었던 실마리는 어쩌면 든든한 밧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화’는 작가가 지금까지 도달한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완벽한 지점에 서 있다. 48쪽, 2만 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