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잔, 50년 넘게 茶에 푹 빠져…“분에 넘치는 욕심 버리는 것이 건강비결”[100세 시대 명사의 건강법]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지난 1일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정동길에 자리한 덕수궁 중명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이라고 말했다.

■ 100세 시대 名士의 건강법-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문화유산국민신탁 창립 15돌
문화지킴이 300명서 시작해
현재 1만 5천…10만 명 목표

문화계의 대표적인 마당발
84세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

은악양선이 福 부르는 방법
불교음악 청취로 하루 시작

글·사진=박현수기자

이번 주 명사의 건강법 주인공은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다. 김소선 전 흥사단 이사장의 추천이 있었다. 출판계는 물론 문화계의 대표적인 마당발로 우리 나이 84세인데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추천사유다.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삼성출판박물관에서 진행했다. 고서와 유물 등이 가득 찬 접견실은 박물관 특유의 냄새가 풍겼다. 그가 출판으로 모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오랜 꿈이었고, 그의 모든 출판 인생이 집대성된 곳이다. 1990년 개관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과 소설가 김동리 선생 등이 참석해 축하해 줬다. 국보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13권을 비롯해 ‘월인석보’22·23권 등 보물급 고서 11권과 인쇄기계, 목판, 문방사우 등 출판유물 40여 만점이 전시돼 있다. 그는 경제적인 지원을 받기 힘든 사립박물관을 “‘사명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어에 나오는 ‘지지자 불여 호지자, 호지자 불여 낙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구절을 인용하며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며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기왕에 하는 일은 즐겁게 감사하며 하라”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1일 문화유산국민신탁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정동길에 자리한 덕수궁 중명전 2층에서 한 차례 더 진행했다. 중명전은 고종황제가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을사늑약을 체결했던 근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민간기금으로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는 법인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트러스트(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보전가치가 큰 문화유산을 매입해 보전ㆍ관리하는 운동)를 기초해 2007년 3월 설립됐다. 2009년부터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이라고 생각해 출판박물관보다 더욱 애지중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문화계 거인’ ‘출판계 대부’ ‘축사의 달인’….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은 이후 ‘문화계 대통령’이 추가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지난 1일 사무실이 있는 덕수궁 중명전 2층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남의 흉과 허물은 입에 올리지 말고, 칭찬은 아낌없이 하라’는 의미의 은악양선(隱惡揚善)이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조복(造福)방법"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건강비결에 대해 ‘분에 넘치는 욕심 버리기’를 꼽았다. 근원은 그가 존경하는 퇴계 이황 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퇴계 선생은 임금이 만류하는데도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안동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일종의 재능기부를 하며 70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천주교도로 내몰려 18년간 귀양 생활에 좌절도 했으나 퇴계 선생의 책을 읽으며 심신을 다스려 500권의 저술을 남겨 오늘날 큰 스승으로 우뚝 섰다. 그러면서 선비정신을 잇고 있는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전 기획예산처 장관)을 소개했다. 특히 “내 인생에 길을 열어 준 고마운 두 분”으로 자신의 형인 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 회장과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을 들었다.

김 이사장은 한국차(茶)문화협회 부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차 애호가다. 그의 건강비결이기도 하다. 차와의 인연은 1968년 삼성출판사 부산지사장 시절 해인사 주지와 국민대 이사장, 제헌국회 의원을 지낸 효당 스님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효당은 경남 사천시 봉명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다솔사에서 차밭을 가꾸며 건강을 다졌다고 했다. “효당 어른 덕에 차를 알게 되었어요. 이후 지금까지 차에 푹 빠졌지요. 작설차를 하루 평균 8잔 정도 숭늉 마시듯 합니다”. 작설차는 물질대사를 촉진할 뿐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충치 등을 예방하며 빈혈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작설차 덕분에 현재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

지독한 애연가였다. 자택과 사무실, 승용차 등 7곳에 재떨이를 갖다놓고 담배를 피울 정도였으나 20여 년 전 금쪽같이 예뻐하는 손녀와 금연 약속 후 단번에 끊었다. 술도 한창때는 하룻밤에 8차까지 갔을 정도로 말술을 마셨으나 “5년 전 주치의가 금주하면 100세까지 사는 것을 보장한다고 해서 마시지 않는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 이사장은 “100세 시대에 30년은 배우고, 30년은 생업에 전력투구하고, 나머지 40년은 사회에 봉사하는 인생은 아름답다”며 ‘30·30·40론’을 설명했다.

운동은 “골프를 즐겼으나 후배들에게 부담 주는 것 같고, 시간도 아까워서 수년 전부터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걷는 것 정도가 가장 큰 운동이라고 했다. 종종 평창동 자택에서 구기동 출판박물관까지 걸어서 출퇴근하는데, 약 5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일과는 오전 5시 30분에 기상한다. 눈뜨면 가장 먼저 라디오 불교방송을 통해 설법과 불교음악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조간신문을 읽고 아침 식사를 한다. 식단은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골고루 잘 먹는다. 인터뷰를 하면서 두 차례 함께 식사했다. 첫째 날 저녁 메뉴는 두루치기, 다음 날 점심은 추어탕.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비웠다. “저녁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일찍 퇴근해 가능한 한 9시 뉴스를 보고 9시 30분쯤 잠자리에 든다”며 “불면증을 모르고 살아왔다”고 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삼성출판박물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집에 보관된 고서와 유물은 그저 개인의 애장품에 불과하지만, 박물관에 보관하면 공유재산이 된다"며 "기업인들이 돈을 벌면 사회에 환원하는 것처럼 문화재도 사회를 위해 환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자 목걸이를 선물하며 손수 걸어 주었다. 목걸이에는 퇴계 선생의 필체로 적힌 은악양선(隱惡揚善)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남의 흉과 허물은 입에 올리지 말고, 칭찬은 아낌없이 하라’는 의미다.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조복(造福)방법”이라고 했다. 문득 지난 5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명사의 건강법’ 인터뷰 때 말씀이 떠올랐다. ‘주변에 100세까지 건강하게 산 사람이 7명 있는데 두 가지 공통점이 첫째, 욕심을 버리고, 둘째, 남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이다.’

300명에서 시작한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 수는 현재 1만5000명을 넘어섰다. 인터뷰를 계기로 기자 가족 4명도 회원가입 신청서를 써 문화유산 지킴이에 동참했다. 목표인 10만 명을 돌파할 때까지 김 이사장의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건강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걸어온 길

1939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1958년 목포 상고와 1964년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위 과정과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 과정, 부산대 경영대학원 최고위 과정, 2000년 고려대 컴퓨터과학기술대학원을 수료했다.

1965년 (주)삼성출판사 부산지사장과 전무이사, 부사장을 거쳐 1987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듬해 삼성출판인쇄 대표이사도 맡았다. 이어 1989년 경찰청 경승단 중앙후원회장과 1990년 한국차문화협회 부회장, 한국서지학회 부회장, 한국박물관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같은 해 국내 유일의 출판전문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을 설립해 관장에 취임했다. 1991년 문화체육부 한국문화학교교육협의회장, 1992년 삼성출판사 회장을 맡았다. 이후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박물관협회 회장을 지내는 동안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에 크게 힘썼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삼성출판박물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100세 시대에 30년은 배우고, 30년은 생업에 전력투구하고, 나머지 40년은 사회에 봉사하는 인생은 아름답다"며 ‘30·30·40론’을 설명했다.

특히, 2004년 서울세계박물관대회(ICOM)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올림픽’의 힘을 세계인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9년 민간기금으로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는 법인인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고 나서부터는 회원 확보에 여념이 없다. 광화문문화포럼 회장, 2013년 철도박물관 운영위원장 등도 역임했다.

김 이사장은 성공한 출판기업인에서 덕망있는 문화예술인으로 변신했다. 현재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대한불교조계종 ‘불교포럼’ 공동대표와 중앙신도회 고문, 민주평통 자문위원 등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올림픽 올림픽 기장 문화상(1988), 문화부장관 표창(1990), 대통령 표창(1991), 한국출판학회상(1994), 국민훈장 모란장(1995), 삼균학회 학술공로상(2001), 월드컵기장(2002), 제7회 명원차문화 대상(2002), 제7회 일맥문화대상 문화예술상(2004), 제21회 고운문화예술인상(2010), 은관문화훈장(2011), 제15회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2012), 제21회 4.19문화상(2020) 등 두 차례 훈장을 비롯해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