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축제는 문명의 장치이자 소통하는 공간

■ 지식카페 - 김헌 · 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0) 축제와 국가

공자가 제일 원하는 일 묻자
증점 “향연 즐길 것”에 탄복

모두가 함께하는 場이어서
정치적 이상 실현하기보다
축제 참석하는 것 높이 평가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 여느 때처럼 공자는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공자가 꺼내 든 화제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있으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자로가 먼저 대답했다. 자신은 큰 나라의 정사를 담당하고 싶고, 중용되면 어떤 역경이라도 기필코 극복해가며 3년 만에 백성을 교화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염구라는 제자는 대국이 아니라 작은 나라를 맡아 다스리길 원한다면서 3년 정도 다스리면 백성들은 넉넉하게 살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자로는 백성을 교화하겠다고 했지만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역량이 없고 단지 먹고사는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함께 있던 공서적은 자신은 그저 배우고 싶을 따름이라며 정치에의 참여보다는 학문 연마를 앞세웠다. 그럼에도 등용된다면 군주가 각종 의례를 행할 때 곁에서 도우며 배우고 싶을 뿐이라고 답했다.

공자는 옆에 있는 증점을 쳐다보았다. 그는 “늦은 봄철에 봄옷으로 갈아입고 어른 대여섯 명, 아이 예닐곱 명과 같이 기수에 가서 목욕한 후 무 언덕의 제단에서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으며 향연에 참석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공자는 증점과 함께하고 싶다며 크게 탄복하였다. 이는 군주에게 중용되어 고도의 정치적 이상을 펼쳐내고자 갈망했던 평소의 공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여 이러한 의문이 든다. 공자가 증점의 말에 그리 크게 공감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힌트는 ‘제단’에 있다. 위의 해석은 한대의 독특한 사상가였던 왕충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 그는 무 언덕에 있는 제단을 기우제를 치르던 제단으로 보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풀이하는 마지막 구절도 기우제가 끝난 뒤 함께 참석했던 이들과 어울려 노래 부르고 시를 읊조리며 기우제에 바쳐진 희생물을 나눠 먹으며 향연을 즐긴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프랑스의 중국학을 대표하는 마르셀 그라네는 고대 중국의 축제를 연구하는 대목에서 왕충이 말한 기우제는 공자의 조국인 노나라에서 해마다 봄이 오면 한 해의 순조로운 농경을 위해 제때에 비가 오기를 염원하며 치르던 성대한 규모의 축제였다고 했다. 또한 소멸, 죽음 등으로 표상되는 겨울이라는 시련의 시기를 이겨내고 생명이 새롭게 약동하는 희열을 발산하고 만끽하는 봄 축제였다고도 했다.

왕충은 공자가 이러한 축제에 참석하여 축제를 즐김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보다 우선시했다고 본 것이다. 물론 공자가 정말로 그러했는지를 확인할 길은 없다. 하여 그저 독특한 사상가답게 독특하게 해석해낸 결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왕충은 실증적 성향을 강하게 띤 학자였다. 이를 감안하면 공자가 실제로 정치에의 참여보다 축제에의 참여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을 개연성이 높다. 또한 증점의 말을 일반적 해석과 다르게 해석했음을 보면 왕충 자신도 그렇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축제가 정치에 우선한다는 관념이 고대 중국에 제법 퍼져 있었음이다.

축제는 태곳적부터 첨단 디지털 문명이 운위되는 오늘날까지, 오랜 세월 동안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지역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는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한 축제가 사라질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웅변해준다. 또한 축제는, 공자가 어른 대여섯, 아이 예닐곱과 함께 기우제에 참석하기를 소망했던 것처럼 젊은이만을 위한 장이 아니었다. 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는 모두의 장이요, 모두를 위한 장이었다.

그래서 국가는 축제를 지원하고 안전하게 관리할 책임을 져야 한다. 인류 역사가 밝히 말해주듯이 축제는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문명 장치이자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열려 있는 모두를 위한 장이기에 그러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국가가 이를 외면한다면 국가는 그 존재 이유를 추궁하는 목소리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가 가족이나 지인의 범위를 넘어 국가 공동체 차원에서 기억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