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지배하고 독점했던 바다… 그 끝엔 ‘식민지 고통’ 있었다[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문화일보
  • 입력 2022-11-25 09:29
  • 업데이트 2023-08-0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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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길고 긴 항해 끝에 돌아온 고향 그리스 이카다 앞바다 전경. 창조 신화부터, 대영제국의 찬란한 빛까지 바다는 인간 역사 내내 출발점이자 철학적 모티프가 돼왔다. 게티이미지뱅크



■ 지식카페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35) 물과 바다의 철학

헤겔 “근대화란 바다로 나가는 것”… 카를 슈미트 “20세기 바다는 단 한 국가에 속해 있다, 바로 영국”
바다 건너의 땅을 ‘유럽의 식품저장고’ 여겨… 각 국가의 힘겨루기 결과는 식민지 쟁취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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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태곳적부터 인간 삶에 개입해 왔다. 자연으로서뿐만 아니라, 도덕적 징벌이나 존재론적 개념, 경제적 환경으로서 말이다. 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대홍수의 상처일 것이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구전돼온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하고 있는 대로,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신 엔릴은 대홍수를 일으켜 마음에 안 드는 인간들을 몰살한다. 신탁을 받은 인간 우트나피시팀만이 방주를 만들고 가족들을 태워 재난을 피했다. 짐승들도 길든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가리지 않고 방주에 태웠다. 무서운 홍수가 그치고 배는 니시르 산에 정박했다. 우트나피시팀은 새를 날려 보냈고 뭍을 찾는 새가 돌아오지 않자 물이 빠진 것을 알고 비로소 동물들을 방주에서 내려놓았다. 이 이야기는 몇백 년 후 성서에 그대로 복사돼 우리가 잘 아는 노아의 이야기가 된다.

어쨌든 홍수 신화만이 삶에서 물이 근본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기원전 6세기의 탈레스는 만물의 원천이 ‘물’이라고 하였다. 괴테는 ‘파우스트’(정서웅 역)에서 이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를 등장시켜 이렇게 말하게 한다. “만물은 물에서 생겨났도다!/ 만물은 물로써 생명을 유지하도다!” 탈레스의 제자였던 아낙시만드로스 역시 습한 것이 태양에 의해 증발하면 거기서 생물이 생기며, 태초에 사람은 물고기와 매우 비슷했다고 생각했다. 물이 존재하는 것들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탈레스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물을 근본 원리로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물이 신들이 하는 맹세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신들은 물을 걸고 맹세했는데, 그 물이 바로 저승의 경계를 흐르는 스틱스강이다. 맹세는 삶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데, 신들이 그 맹세의 징표로 의존했던 것이 바로 물인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고귀하고 오래된 것만이 맹세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신들의 삶조차 물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강물의 이야기를 넘어 인류는 ‘바다’라는 더 큰물과 만난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 중 배를 타야 했고 심한 멀미가 그를 괴롭힌다. 그 와중에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감동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를 ‘이탈리아 기행’(박영구 역)에서 기록하고 있다. “어디를 둘러보나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세계를, 그리고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진정으로 파악할 수 없다.” 이 말은 괴테의 경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갈 수 있었던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표현한다. 바다 위에서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몸담을 수 있는 세계의 크기를 가늠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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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도를 한 최초의 항해자들은 별자리에 의존하면서 바닷길을 찾았는데, 이 별자리 항해 방식을 ‘오뒷세이아’(천병희 역)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바다의 길을 찾는다. “그는 줄곧 플레이아데스와 늦게 지는 보오테스와/ 사람들이 짐수레라고도 부르는 큰곰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신들 중에서도 고귀한 칼립소가 바다를 항해할 때/ 이 별을 항상 왼쪽에 두라고 그에게 일러주었던 것이다.” 큰곰, 즉 북두칠성을 왼쪽에 두는 것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한 가지 기본적인 항해 기술이었다.

별자리를 보고 바닷길을 찾는 원시적인 항해술을 가진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바다까지 알고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북유럽 노르웨이의 피오르 해안에 대한 지식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오뒷세이아’의 다음 항해 묘사를 보자. “우리는 그곳의 이름난 포구로 들어갔는데/ 가파른 암벽이 좌우를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고/ 돌출한 갑(岬)이 서로 마주 보며 포구의 통로 쪽에/ 우뚝 솟아 있어 입구는 매우 좁은 편이었소.” 이것은 피오르 지형에 대한 묘사다. 항해는 남부 유럽의 뜨거운 햇살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음산한 북유럽의 기괴한 해안마저, 확장된 세계로서 선물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땅을, 즉 농지를 경작하고 관리하는 일만큼이나 흙을 뒤집는 농부처럼 노를 들고 바다를 경작하는 일이 중요했다. 땅의 경영에 못지않은 바다의 경영을 이야기하면서, 서구의 대항해시대와 그 이후 근현대세계에 일어난 일들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에 의한 바다의 지배는 서구의 번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식민지가 된 다른 세계의 고통 이야기이기도 하다.

헤겔은 ‘법철학’(임석진 역)에서 대지와 바다를 서로 대치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가족생활의 원리로 보면 대지(die Erde), 즉 부동의 토지가 삶의 조건이 되지만 산업 측면에서 외부로 활동을 펴나가기 위한 자연의 요소가 되는 것은 바다(das Meer)이다.……흙더미에 발을 딛고 서서 시민 생활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향유하며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마당에 여기에는 유동성과 위험과 몰락의 요소가 끼어들어 온다. 이런 와중에 산업은 바다라는, 최대의 연결매체를 통해 원격지에 있는 나라들을 교역의 상대로 하면서 계약이 도입된 법적 관계가 성립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교역은 동시에 문화 형성의 최대 수단이며 상업이 지니는 세계사적인 의의를 실감하게 한다.” 여기서 헤겔은 땅 위에서의 삶은 한정된 범위에 안주하는 재래적인 것으로, 바다로 나가는 일은 새로운 산업과 문화를 형성하는 일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바다로 나가는 일에 소극적이었던 국가는 쇠퇴한다는 교훈적인 말을 다음처럼 덧붙인다. “바다와의 연관성이 문명수단을 위한 어떤 요소를 담고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에 치중해온 국민의 바다에 대한 관계와 이와는 반대로 항해를 아예 금지당했던 국민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이집트인이나 인도인이 자국 내에 맥없이 갇혀 있으면서 두려움마저 자아내는, 부끄럽기조차 한 미신에 파묻혀 있던 모습과―스스로 노력하는 위대한 국민의 경우 모두가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이 좋겠다.” 동방을 평가절하하는 이 구절과 더불어 근대 서구인들이 대지에 머물지 않고 바다로 나가 사업을 일으킨다는 기획의 핵심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헤겔은 대지에 머무르는 국가는 전근대적인 미신에 사로잡힌 맥없는 국가라고 말한다. 근대화란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그럼 유럽인은 바다 건너 어디로 가며, 거기엔 무엇이 있는가? 바로 식민지다. “이렇듯 바다를 통한 폭넓은 연계는 식민(Kolonisation)의 수단도 제공해준다.……시민사회는 식민지 건설로 나서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경악스럽게도, 바다에 관한 서구의 사상에서는 이렇게 식민지 건설이 당연시되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바다 여행의 궁극적 목적지는 식민지고, 유럽 시민사회의 아들인 헤겔 역시 이를 당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철학과 생명이 오로지 서구인의 것이며, 바다 건너의 땅은 유럽의 배를 채울 수 있는 식품 저장고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땅과 바다라는 대조적인 두 축을 중심으로 현대 유럽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20세기의 카를 슈미트의 ‘땅과 바다’(김남시 역)는 얼마간 헤겔의 착상을 이어받고 있다. 슈미트는 말한다.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란다.” 이런 땅과 바다의 싸움에서 가장 돋보이는 국가는 어디인가? 바로 영국이다. 근대 유럽 바다의 역사는 영국 역사의 성공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대양 취득은 바다의 측면에서 이 세기에 이루어진 유럽 전체의 약진의 결과야. 그를 통해 전 지구적 공간질서의 근본 노선이 결정되었는데, 그 본질은 땅과 바다를 분리하는 데 있어. 그리하여 육지는 20여 개의 주권국가에 귀속하게 되었어. 반면, 바다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거나 모두의 것으로 여겨졌는데, 실제로는 결국 단 한 국가에 속했지. 바로 영국이야.” 유럽의 대지가 수많은 국가에 의해 분할됐던 데 반해, 바다에선 오로지 영국이 주도적이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아는 바처럼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전 지구에 식민지의 고통을 안겨주는 국가가 된다.

그런데 그것은 최종적인 “유럽 전체의 약진의 결과”라는 것이다. 즉 영국의 성공 이전에, 또는 그와 맞물려 유럽 전체가 바다에 나가 나름의 힘을 겨뤘고, 그 힘겨루기의 결과란 식민지의 쟁취였다. “유럽민족들은 그다지 면밀한 고민 없이 지구상에 있는 비유럽인들의 땅들을 식민지 땅으로, 다시 말해 점령과 약탈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의견을 같이하였지. 이건 역사적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점이야. 이 시대는 발견의 시대보다는 차라리 유럽의 땅의 취득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올바를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야.” 슈미트는 유럽은 합리적인 면에서 다른 세계보다 우월하고 그래서 다른 민족들에게 명령하는 지위를 가졌으며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다고 이해한다. “유럽인들의 합리적 우월성……그것은……비유럽 민족들로 하여금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었지. 비유럽 민족들에게는 유럽 문명을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인가 하는 선택이 주어졌어.”

헤겔의 눈에나 슈미트의 눈에나 바다는 오로지 서구인의 역사에 속한 것일 뿐이었다. 당연히 오늘날의 바다는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오늘의 바다는 세계 시민의 것이고, 또 무엇보다 난민들을 위한 바다이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헤겔(1770∼1831)


피히테, 셸링에 이어 독일관념론을 완성한 철학자다. 그의 ‘법철학’은 인간 정신과 의지가 현실적인 사회 속에 객관적으로 표현된 것으로서 법의 본질을 다루는 작품이다.

카를 슈미트(1888∼1985)

독일 법학자로서, 나치 정권에 부역하여 전후 전범으로서 영어 생활을 하기도 했다. 나치 권력을 법학적으로 정당화시켜준 인물이 슈미트이다. 베냐민, 타우베스 등의 학자들과 현대 철학의 중요한 쟁점을 이루는 사상적 교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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