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침목의 조각가’ 정현

  • 문화일보
  • 입력 2022-11-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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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쓸모를 다한 철길의 침목(枕木)을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하는 건, 초등학교 때 철길로 다닌 경험의 영향이 컸다. 화물열차로 탱크나 장갑차 등을 실어나르는 걸 봤다. 그 무거운 걸 지탱한 게 침목이다. 밑면에는 자갈 등에 눌려 생긴 수많은 흠집이 있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딘 인고(忍苦)의 흔적이다. 그런 침목은 내가 살아온 것보다 훨씬 더 험난한 세월을 견뎌, 아름답고 힘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험난한 현대사를 거쳤으니까, 그것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미술계에서 ‘침목의 조각가’ ‘물질에 응축된 시간과 힘을 표현하며, 인간을 성찰해온 예술가’ 등으로 일컫는 정현(66)의 말이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로 유학 갔던 그는 현지에서 자신만의 조형언어에 걸맞을 도구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쇳덩어리를 두드려 보기도 하고, 큰 각목을 도끼로 내리찍어 인체를 변형한 작품도 만들어 보며, 방법을 탐색하는 과정에 떠올린 것이 침목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침목뿐 아니라, 철의 부산물을 깨부수려고 허공에서 낙하하기를 수백∼수천 번 반복해 16t 무게가 절반까지 줄어드는 파쇄공, 아스팔트로 쓰이다 버려진 아스콘, 건물을 지탱하다 폐기된 철근 등으로도 작품 재료를 다양화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유를 존중해줘야 한다. 쟁취하려고 하고, 내 마음대로 한다면, 그게 사랑일까. 대상 자체를 중요시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이유를 존중하는 조형언어를 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각이 지닌 ‘자유와 사랑’도 발견하고 알게 됐다고 한다.

세계적인 조각가로 발돋움한 그는 “고집·광기로 통칭 되는 일반적 작가상(像)과 내 캐릭터는 분명히 다르다”고 한다. “오브제에 숨은 힘을 찾는 것은 내 인생의 힘을 찾는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재료의 시간’이나, ‘내 속의 시간’이나 모두 오래 걸리고, 더디고, 그러면서 서서히 작품화한다.” 그의 개인전 ‘시간의 초상’이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지난 10월 5일 개막해, 오는 12월 4일 끝난다. ‘침목’ 연작 등 다양한 조각·설치 84점과 드로잉을 포함한 100여 점을 선보인 자리다. 그의 작품을 두고 ‘눈을 즐겁게 하기보다 가슴으로 겪게 한다’고 평가하는 이유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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