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오래 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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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1-30 11:30
업데이트 2022-11-3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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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빠는 술을 마시고 와서 형과 나를 깨워 앉히고 울었다 너희를 제대로 키운 게 맞지/ 엄마는 그만 자라고 하고/ 대학생인 형은 네 맞아요 아빠 맞아요 하품하며 말하고/ 나는 우리 반에서 팔씨름은 내가 제일 세요라고 말했다/ 아빠는 웃었다 잠들었다 무너지듯’ - 이우성 ‘무너지는 것’(시집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내게는 만화가 친구가 있다. 친구가 만화가가 된 것이 아니라, 만화가였던 사람이 친구가 된 것이다. 내게 만화가 친구가 생기다니. 다양한 친구들이 있지만, 어쩐지, 만화가 친구는 각별하다. 만화책을 잔뜩 얻거나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가 얼마 전 아빠가 되었다. 그는, 아내의 임신 소식도 출산 소식도 모두 만화로 전했다. 요즘은 육아 일기를 올리고 있다. 나는 SNS를 통해 그들이 만들어가는 일상을 보고 있다. 예전엔 별일 아니었던 생활이 새삼스럽고 남다르게 변화해가는 모습에 절로 감탄하며 배시시 웃게 된다. 한 번은 그들 일가가 서점에 찾아온 적이 있다. 만화책을 뚫고 나온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부쩍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가 신기하기도 했다. 책임감이란 그런 것이지. 아이가 자라고 친구 부부는 늙어갈 테고, 그래도 그들은 재미있게 살 것 같다. 온갖 간난고초가 닥쳐와도 기지를 발휘해서 기어이 헤쳐나가는 만화의 주인공처럼.

그저 축복만이 아니다.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오래 관찰했다는 뜻. 그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아이를, 아이와 함께 있는 아내를 관찰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빛나는 영감을 얻어냈을 것이다. 오래 보았으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필경 그럴 것이다. 그런 사람은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 분명하므로. 문득 돌아가신 지 스무 해 가까이 되어가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보고 살았나. 내 쪽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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