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노래하려 할 때 그것은 사랑이 되었다” … 쓸쓸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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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2-01 09:02
업데이트 2022-12-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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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서른살 슈베르트,뮐러 詩에 곡
한 젊은이의 실연과 상실 담아
원래 제목 직역하면 ‘겨울여행’

말로 표현 못할 만큼 아름다운
24개 곡으로 이뤄진 연가곡집


가을이 걷히고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찾아올 때쯤이면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Die Winterreise, D.911)가 듣고 싶어진다. 곡이 시작되면서 몰려오는 쓸쓸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감정으로 전이되기 시작하고 점점 고조된 감정은 이내 강렬하게 터져버린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우리는 쉽지 않은 질문과 복잡한 고민거리를 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 멀리하고 떨쳐내려 해도 공허함과 옥죔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겨울 나그네’는 단지 한 젊은이의 실연과 상실에만 한정된 곡이 아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절망과 슬픔을 노래한다. 그러나 노래는 쓸쓸함의 미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아픔과 상실을 치유한다. 슈베르트가 노래하는 슬픔의 선율은 듣는 이의 온몸을 굽이굽이 몰아치며 아픔을 씻어주고 덜어준다. 잘 꾸며진 정원보다 들판에 외롭게 핀 들꽃에,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보다 실연의 아픔에 눈길이 가듯. 가장 보잘것없고 낮은 곳에서 찾은 순수함은 위로와 치유의 힘을 지닌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은 슬픔이 되었고, 내가 슬픔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은 사랑이 되었다.”(슈베르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듣다 보면 음악과 심장박동 수가 같아지는 순간이 온다. 노래에 빠져 있는 동안 음악이 눈 내리는 겨울 길로 듣는 이를 안내한다. 한밤중에 여인에게 밤 인사를 하며 떠나는 사내의 마음으로, 꽁꽁 언 시냇가로,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눈밭으로, 그러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쉬도록 인도한다.

겨울엔 겨울 그대로의 쓸쓸함에 온전히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 1시간 20분 동안 쓸쓸한 겨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곡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다. 이 곡의 원제목인 빈터라이제(Die Winterreise)를 직역하면 ‘겨울 여행’이라는 뜻인데, 그 대신 ‘나그네’라는 말을 누가 제목에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더욱 운치 있게 들린다.

1827년 서른 살의 슈베르트가 빌헬름 뮐러(1794∼1827)의 시에 곡을 붙인 ‘겨울 나그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연가곡집(악상이나 곡의 성격이 하나의 음악적 체계로 연결된 가곡집)이다. 24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곡으로,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기 4년 전 1823년 역시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one Mullerin, D.795)를 작곡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한 청년의 여행, 취직, 연애, 실연을 차례로 노래하며 마침내 시냇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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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에서는 생을 스스로 마감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어둡고 우울한 정조가 가득하다. 추운 겨울,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연인의 집 앞에서 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오직 달빛에 의지한 채 눈 덮인 들판으로 정처 없는 방랑의 길, 겨울 여행을 떠난다. 산짐승들의 발자국을 이정표(제20곡, Der Wegweiser) 삼아 떠나는 위태로운 여행길에서 청년은 고통과 절망 속에 허덕이며 도깨비불(제9곡, Irrlicht), 백발(제14곡, Der greise Kopf), 까마귀(제15곡, Die Krahe), 여인숙(제21곡, Das Wirtshaus) 같은 죽음에 대한 환영과 상념으로 스러져 간다.

그리고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제24곡, Der Leiermann)에서 라이어(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던 작은 손풍금)를 연주하고 있는 노인에게서 자신과 같은 비참함을 발견하곤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청년의 겨울 여행 종착지는 절망이었음을 덤덤하고도 비극적인 정조로 노래한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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