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부터 이어온 한민족 디자인… 미래 세대에도 큰 영감[지식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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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2-02 09:11
업데이트 2022-12-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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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1 구석기 시대에 사용됐던 1회용 다용도 주먹도끼



■ 지식카페 - 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 (22) 시대 앞서간 우리의 디자인

디자인은 기계적 대량 생산 체제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 동서고금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
일제가 만들어낸 ‘고미술’ 개념 아닌 선조들의 뛰어난 조형미… 세계 놀라게 할 디자인으로 이어 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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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디자인은 표준화된 형태로 대량 생산된 것 혹은 그런 물건을 고안하는 일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디자인은 순수미술과 다르다고 배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본말이 전도돼도 한참이나 전도된 말이다. 어떤 것이든 그것이 만들어지는 방법에 의해 존재성이 정해지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서점에서 파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파는 음악이나,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도 전부 예술로서의 문학, 음악, 영화와 구분해서 다른 무엇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사용하는 사람에게 컵은 대량생산된 것이든, 손으로 만든 것이든 컵일 뿐이다. 디자인은 컵과 같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용되는 것이나 그런 것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여기서 ‘사용’이라는 개념은 단지 물리적인 기능만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적인 수많은 가치를 함유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기계적 대량 생산 체제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 동서고금으로 디자인이 없었던 지역이나 시기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 현대 해외 디자이너들의 디자인들만 살펴봤다. 이즈음에서 잠시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뛰어난 디자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보관돼 있는 유물들 거의 모두가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당대에 사용했던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고미술’이라는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개념은 적합하지 않다. 이들 중에는 지금의 시각에서 봐도 대단한 디자인이 많다.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다. 고미술학자나 고고학자들은 신석기 시대의 간석기와 비교해 이런 뗀석기들을 기술적으로 낙후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돌을 가는 것과 깨는 것 사이에는 어떤 기술적 격차도 없다. 그저 오래 앉아서 갈면 간석기가 되고, 깨서 쓰면 뗀석기가 된다.

주먹도끼는 막 만들어진 게 아니라 대체로 위는 뾰족하고, 아래쪽은 조금 둥글며 양옆은 날카롭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거친 모양과는 다르게 손으로 쥐고 구멍을 뚫거나 가죽이나 고기를 자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다용도의 도구다.

이런 주먹도끼가 만들어졌던 시기는 구석기. 지구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도구를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동할 때 무거운 석기를 들고 다니는 것도 어렵다. 그러니까 주먹도끼는 필요할 때 어디서나 구하기 쉬운 돌을 몇 번의 타격으로 만들어 썼던 1회용 다용도 도구였다.

1회용 도구를 정성 들여 만드는 경우는 없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주먹도끼는 신석기 시대의 석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당시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능성이나 경제성을 따져 보면 현대의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디자인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2 오리 모양의 토기



고조선이 망하고 난 뒤 낙동강 주변에서 만들어졌던 토기 중에 오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 있다. 자세히 보면 벼슬이 있고, 눈이 납작하게 양쪽으로 튀어나와 있으며 몸통은 아무것도 없이 유선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오리와는 전혀 닮은 구석의 모양이 없는데도 놀랍게도 누구나 오리로 본다. 이런 형태를 추상이라고 한다. 추상은 현대 조각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오리 모양 토기에서 놀라게 되는 점은 장식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필요한 것만 표현한다. 고대에서 볼 수 없는 대단히 현대적인 조형 감각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3 주전자로 사용됐던 오리 모양 토기



오리 모양만 보다 보면 용도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데, 이 토기는 주전자로 추정된다. 아마도 실생활에 사용됐던 것이기보다는 제사나 특별한 의식에 사용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현대적인 추상성에 기능성까지 잊지 않고 챙기는 것을 보면 요즘의 디자인보다도 훨씬 앞서 있다. 디자인이 상품인지, 예술인지 논란을 한참이나 넘어서 있는 첨단의 디자인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4 백제 시대의 보도블록



백제 시대의 유물 중에 정사각형에 괴물 같은 형상이 캐릭터처럼 만들어져 있는 것이 있다. 모두 부조로 만들어진 형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데, 이 유물의 용도가 매우 재미있다. 박물관에서는 벽돌이라고 설명돼 있지만 보도블록이다. 발굴 당시에도 바닥에 나란히 깔려 있어서 백제시대에 궁궐이나 사찰에 깔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도블록을 깔 정도였다면 백제의 다른 생활들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이 보도블록의 표면에 조각된 모양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같은 모양을 깔거나 서로 다른 모양들을 교차해서 깔았던 것 같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5 여러 개의 보도블록을 연속한 모양



여러 개를 연속시켜 보면 요즘의 보도블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있다. 이런 보도블록이 깔려 있었던 백제시대의 절이나 궁궐은 얼마나 화려하고 찬란했을까? 보도블록에 조각된 형태도 요즘의 캐릭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디자인이라 지금 그대로 만들어 써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6 고려의 은제 도금 주전자 및 승반



은으로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주전자와 승반은 화려함에 있어서 극치를 보여준다. 고려 시대의 디자인 감각이 대단히 뛰어났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주전자를 순전히 얇은 은판을 손으로 두드려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7 주전자의 구조



그렇게 만들어진 이 주전자는 총 4개의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맨 아래쪽의 용기같이 생긴 것은 정반이라고 하는데, 뜨거운 물을 부어 주전자에 담긴 술의 온도를 유지하는 용도다. 위의 두 부분은 장식인데, 화려해 보이지만 역시 속이 비어 있다. 만들기가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 주전자를 자세히 보면 표면에 장식으로 가득 차 있다. 거의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장식과 기능이 최고 수준으로 결합된 주전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8 포도 그림이 그려진 조선 시대 철화백자



포도 그림이 그려진 철화백자는 조선시대의 유물처럼 심플하고 여백미가 뛰어나다. 둥근 백자 위에 철분으로 포도 모양이 그려져 있는데, 수묵화 기법으로 그려져 있어서 공예와 순수미술이 만난 유물로 보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것은 디자인이다. 수묵화의 이미지로 디자인된 도자기다. 그림이 도자기의 모양에 맞춰 그려진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잘 살펴보면 그림이 도자기 윗부분에 치우쳐서 양쪽으로 사선 모양의 구도를 이루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9 철화백자의 그림과 여백 형태의 대비



그렇기 때문에 아래쪽에 비워진 여백 면은 도자기의 모양에 따라 마름모 형태의 구조를 형성한다. 그래서 이 도자기의 흰 여백 면은 그냥 비워진 게 아니라 위쪽으로 강하게 상승하는 동세를 만들고 있다. 포도 그림은 양쪽 아래, 대각선 방향으로 내려오는 동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림과 여백이 상반되는 동세로 충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도자기는 단아하고 깔끔하다기보단 대단히 강렬해 보인다. 생활용품에 장식이 아니라 고차원의 조형적 표현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 도자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선조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실생활 디자인에 기능성, 상징성, 현대적 조형성, 장식 등 다양한 가치를 구현해 왔고, 이런 접근들은 현재를 넘어 디자인의 미래에 큰 영감을 줄 정도로 뛰어나다. 생각보다 우리는 매우 대단한 디자인 역사를 이뤄왔던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디자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런 디자인 전통을 바탕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디자인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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