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기업 기부금만큼 중요한 기부처와 투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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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2-0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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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환경·사회·지배구조, 곧 ESG가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면서 기업은 그 실천의 일환으로 사회공헌 비용 지출을 꾸준히 늘려 왔다. 전경련의 ‘2020 주요 기업의 사회적 가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220개 대기업이 지출한 사회공헌 비용은 총 2조9927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8% 늘었다. 2020년 기준 국내 법인(기업) 기부금이 약 8조4000억 원이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액 중 약 68.7%가 법인(기업) 기부였다는 점 등을 통해 국내 기부 시장에서 기업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이렇듯 기업의 기부가 기부 시장에서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분석이나 효과의 검토는 미흡하다. 기부금을 받는 주체인 공익법인의 경우, 국세청에 결산 서류를 제출하고 홈페이지 등을 통해 주요 결산 내역을 공시하는 등으로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부금을 지원하는 기업이 기부금을 어떠한 목적으로 어디에 기부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 구조와 과정은 공개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는 기부금을 받는 쪽, 즉 공익법인에 대한 책무와 투명성을 강조했고, 이에 맞춰 관련 제도도 정비해 왔다. 그렇다면 기부금을 주는 쪽인 기업에도 책임 있는 기부를 하도록 유도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동안 기업의 무책임한 기부는 정치권력의 개입과 국정농단, 인허가 등 반대급부 제공을 위한 로비 자금으로의 변질, 특정 이해관계 집단으로의 기부, 기부금 사적 유용 등의 문제를 낳았다. 특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이 공익법인을 설립하거나 기부금을 통해 면죄부를 받는 등의 사례들로 기부금이 마치 쌈짓돈인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기업의 기부금 유용이나 배임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우려가 ESG의 확산과 더불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업이 기부할 때 대상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기업이 스스로 사회 공헌 파트너를 정할 때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확인하고, 이후 사업평가를 할 때에도 회계 평가 등을 통해 기부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는 있다. 투명성이 확보된 공익법인과의 사회 공헌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경우, 기업은 무엇보다 기부금을 공정하게 운용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파트너 기관의 회계 부정이나 기부금 유용 등으로 인해 기업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평가도 사전에 근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기업은 사회 공헌 사업을 진행할 때 파트너 공익법인이 투명하게 운영되는지, 기부금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되는지를 스스로 점검해 볼 것을 제안한다. 또, ESG 평가기관도 기업의 기부금 집행에 대한 의사결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는지 등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기업 기부금이 불법적인 로비나 부당한 압력으로 집행되는 것을 예방하고, 나아가 기업 내 특정 이해관계에 따라 기부금이 운용되는 부조리를 차단할 수 있는 내부 통제 시스템으로 작동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18년 전, 세계 20개 금융기관이 기업 투자 때 ESG를 함께 검토할 것을 결의한 것처럼, 국내 ESG 평가기관에서도 기업의 공익법인 기부와 관련된 사안을 기부금액 외에 기부 행위와 관련된 프로세스까지도 평가한다면 기업의 기부금 운용이 더 투명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후진적 기부 문화로 우리 사회가 치러 온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차단할 수 있고 ESG 경영의 참 효과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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