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vs 인민’ 갈등 드러낸 ‘백지시위’… 시진핑 통치 정당성 위협[Deep Read]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정재흥의 Deep Read - 中 ‘백지시위’

근대화세례 받은 2030이 주도…‘방역 봉쇄 - 이동 제한 - 민생 후퇴’ 비판하며 ‘위드 코로나’ 이끌어
톈안먼 시위는 ‘정치’, 백지시위는 ‘경제사회’ 운동 성격…‘1인 집권시대’ 연 시진핑 통치력 시험대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격리·폐쇄·봉쇄에 반발하는 대규모 ‘백지시위’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제20차 당 대회를 계기로 1인 집권시대를 연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이 위협당하는 수준에 이르자 중국은 7일 10개 항의 코로나 방역 완화 조치를 내놨다.

◇‘反코로나 봉쇄’ 시위

시 주석은 사회주의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며 중국 특색 사회주의 국가 발전 모델을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을 강조해 왔다. 중국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 국가에서 대규모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하자 강력한 격리·폐쇄·봉쇄 위주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제시하고 코로나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즉각적인 대응 조치를 취했다.

시 주석은 2020년 9월 코로나19와의 전쟁 승리를 선포하고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모두 참석해 인민대회당에서 국가급 표창대회를 성대히 개최하는 한편 주요 방역 공로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시 주석은 당시 연설에서 “엄청난 노력 끝에 제로 코로나 정책은 중국식 사회주의 방역 체계 승리로 정치·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우수성이 증명됐고 코로나19 전쟁에서 전략적인 성과를 올렸다”며 중국식 사회주의 방역 체계 우월성을 대내외에 부각했다.

이러한 가운데 백지시위가 터졌다. 이는 중국 정부 당국의 자존심인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강력한 반발을 뜻하는 것이어서 지도부에 상당한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백지시위는 지난 11월 24일 신장(新疆)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의 진화·대피가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봉쇄로 늦어지고 많은 사상자를 내자 가열됐다. 불길에 휩싸인 화재 현장과 봉쇄로 인해 아파트 문이 잠긴 영상이 SNS로 대거 유포되면서 3년간 지속해온 제로 코로나 정책에 지친 주민과 학생들이 분노했다.

이번 백지시위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다. 11월 26일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등지에서 수천 명의 주민·학생들이 모여 우루무치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코로나19 전면 봉쇄 해제를 외쳤다. 백지시위는 난징(南京), 광저우(廣州), 우한(武漢) 등 주요 도시와 칭화(淸華)대, 베이징대 등 전국 50여 개 대학으로 급속히 확대됐으며 시민과 학생들은 정부로부터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아무 구호도 담기지 않은 A4 백지를 손에 들고 길거리로 나섰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통치 정당성 위협

톈안먼 사태 이후 처음으로 전국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확산했던 초기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는 ‘적대 세력 색출’ 방침을 밝혔다. 천원칭(陳文淸) 중앙정법위 서기는 해외 반중 세력·공산당 내 반대세력들과 연계된 적대세력 침투와 파괴 활동 색출을 지시했다. 중국은 시 주석의 법치사상과 총체적 국가안보관을 바탕으로, 첨단 정보 기술력과 방대한 내부 공안 자산들을 활용해 세밀하고 철저한 물밑 색출을 진행 중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이 중국식 방역 체계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성공사례로 줄곧 일컬어져 온 가운데 발생한 백지시위는 중국 공산당과 시 주석을 난처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통치의 정당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중국이 2020년 이후 3년간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을 통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던 건 사실이다. 실제로 2020년 9월 8일에는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했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서구 국가가 백신 접종률을 높이고 의료 시스템을 대폭 개선하면서 일상을 회복하는 동안 중국은 강력한 봉쇄 위주의 정책만 가져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주민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이는 경기 불황-소비 악화-중소상공인 도산-성장 둔화-실업률 증가 등으로 이어지면서 경제지표를 악화시켰다.

이렇게 누적돼온 불만이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사건을 계기로 일거에 폭발한 셈이다. 톈안먼 사태가 냉전 종식에 따른 국제질서 대변화와 민주화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 변혁 운동’이었다면, 백지시위는 빈부 격차, 도농 갈등, 열악한 사회복지제도와 의료 시스템 낙후 등과 같은 일상생활과 연관된 불만이 표출한 ‘경제·사회적 변혁 운동’이다. 사회·경제적 정의관에 민감한 대학생, 청년과 도시민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당과 인민의 갈등

지난 40년간 중국은 초고속 경제발전으로 인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이에 따른 각종 사회적 문제도 급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국적 규모의 사회보장 시스템과 의료체계 등을 구축하고 체제 범위 내에서 열린 시민사회를 허용해야 하지만, 오히려 봉쇄 위주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취하면서 누적된 불만이 대학생·청년을 중심으로 표출됐다.

이에 시 주석은 지난 1일 샤를 미셸 유럽연합(EU)상임의장과의 회담을 통해 방역 완화와 봉쇄를 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 이를 계기로 위안화 환율이 오름세를 보이는 등 경제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진핑 1인 체제는 앞으로 3개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당과 인민의 갈등, 당 내부 권력 갈등, 미·중 갈등. 지난 20차 당 대회를 통해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 등 3대 권력 가운데 공청단과 상하이방이 전면 배제된 역풍이 언제 어떻게 불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 바이든 미 행정부는 언제라도 중국과 디커플링을 통해 각을 세울 준비가 돼 있다. 바이든은 중국 시민의 평화적 시위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런 가운데 터져 나온 백지시위는 첫째 갈등 요인, 즉 당과 인민의 갈등이 이미 표면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에 따른 봉쇄 정책에 반대하는 전국적 규모의 시위가 확대되고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로 나아갈 경우 당내 권력관계 역시 어떻게 소용돌이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중국은 7일 마침내 코로나19 팬데믹 3년 만에 실질적인 ‘위드 코로나’를 발표했다. 지난달 하순 중국 전역에서 고강도 방역 통제와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백지시위가 일어난 지 10여 일 만의 일이다.

◇‘근대화 세례’ 2030

중국 집권세력의 정책 변화는 백지시위가 단순한 봉쇄 정책에 대한 반대를 넘어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들과 연계된 전국적인 반체제 운동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속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시 주석은 ‘중국식 접근과 지혜’를 내세우며 새로운 코로나 방역 체계를 시행해 갈 방침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근대화 세례’를 받은 2030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톈안먼 사태 발생 33년 만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백지시위를 완전히 잠재웠는지는 미지수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중국 사회과학원 정치학 박사

■ 용어 설명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일어난 민주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무력 진압하면서 빚어진 대규모 유혈 참사 사건. 냉전 종식에 따른 국제질서의 변화와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며 전국 시위로 발전.

‘20차 당 대회’는 지난 10월 진행된 중국 공산당의 20번째 전국대표대회. 시진핑 주석의 3번째 연임, 즉 3기 체제 출범을 공식화함으로써 향후 ‘1인 지배’ 체제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옴.

■ 세줄 요약

‘反 코로나 봉쇄’ 시위 :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격리·폐쇄·봉쇄에 반발하는 대규모 ‘백지시위’가 전역으로 확산함. 시위는 우루무치 화재 사고로 더욱 확산. 백지시위는 33년 전 ‘톈안먼 사태’ 이후 최대.

통치 정당성 위협 : 백지시위는 막 1인 집권시대를 시작한 시진핑 통치의 정당성을 위협. 톈안먼 사태가 민주화로 나아가는 ‘정치 변혁 운동’이었다면, 백지시위는 사회복지·민생과 결합한 ‘경제·사회적 변혁 운동’임.

당과 인민의 갈등 : 시진핑 체제는 ‘공산당과 인민’의 갈등과 마주하게 됨. 백지시위는 ‘근대화의 세례’를 받은 2030이 주도. 중국은 마침내 ‘제로 코로나’ 대신 ‘위드 코로나’를 중심으로 한 새 방역 체계를 발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