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양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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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2-09 11:39
업데이트 2022-12-0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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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혼자 있을 때 남은 밥에 이것저것 넣어서 비벼 먹기에는 양푼이 최고다. 길을 가다 ‘양푼 ○○○’이란 메뉴가 붙은 음식점을 보면 왠지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양푼은 얇은 금속으로 크고 둥글게 만든 그릇이란 대략적인 느낌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 여기에 ‘양은(洋銀)’의 연관성이 떠오르며 ‘싸구려’ 느낌까지 더해지는 이 그릇의 정체는 무엇일까?

양푼은 아무래도 한자와 관련지을 수밖에 없다. ‘화분(花盆)’에도 쓰이는 한자 ‘盆’의 중국어 발음에 ‘ㅍ’ 소리가 들어가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양’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서양을 뜻하는 ‘洋’을 먼저 떠올릴 텐데 정답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종류의 그릇을 볼(bowl)이라고 한다. 서양의 볼이 들어오기 이전에도 있었으니 이 그릇이 서양의 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은색 양푼도 있지만 양푼 하면 노란색이 먼저 떠오르는데 여기엔 이유가 있다. 양푼은 ‘양분(량盆)’으로 보기도 하는데 ‘량’은 서늘하다는 뜻이지만 얇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니 양푼은 놋쇠로 얇게 만든 그릇이다. 놋그릇도 귀한 데다가 얇게 만들기는 더 어려우니 과거엔 귀한 그릇이었다. 그러나 얇게 가공하기 좋은 알루미늄이 들어와 ‘양은(洋銀)’이라 불리게 되고, 여기에 노란색이 입혀지니 과거의 유기 양푼과 비슷해진 것이다.

양푼 비빔밥이나 양푼 동태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싸다’는 형용사가 연상된다. 반면에 샐러드 볼(salad bowl)이나 믹싱 볼(mixing bowl)에서는 ‘싼티’가 느껴지지 않는다. 서양의 것에 대한 동경과 우대가 우리 것에 대한 비하와 차별과 만난 결과다. 놋그릇이 싸구려가 아니듯이 양푼도 싸구려가 아니다. 알루미늄 양푼에 담긴 비빔밥, 동태탕 또한 그릇에 투자하기보다는 맛과 영양에 더 정성을 들인 결과가 아닐까?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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