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오일머니 쥐고 … 세계 중심무대 ‘모래 바람’ 노려

기사 정보
문화일보
입력 2022-12-12 09:05
업데이트 2022-12-23 10:18
기자 정보
김현아
김현아
기사 도구
프린트
댓글
폰트
공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뉴 프런티어 리더십 - 개혁 행보로 주목받는 ‘중동 수장 3인방’

거대 자본 기반 대형 프로젝트

1000조 투입 사우디 ‘네옴시티’
산유국 이미지 벗고 현대화 추진
카타르, 월드컵 개최하며 ‘진보’

비판 쏟아져도 ‘양다리 외교’

미·중 경쟁, 러·서방 갈등에도
얽매이지 않고 국가 실리 추구
중동국끼리는 경쟁 대신 연대

인권 의식 논란은 여전

빈 살만, 반체제 언론인 살해 의혹
카타르 경기장 노동자 학대 폭로
UAE 인권운동가 사망 개입설도



중동(中東)의 리더들이 지금보다 더 주목받던 때가 있을까.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 등 중동 국가 지도자들이 개혁 바람을 일으키며 부상하고 있다. 사실 중동은 역사적으로 외교가의 중앙 무대에 서기보다는 변방지대에 놓인 주변자에 불과했다. ‘유럽을 기준으로 동쪽’이란 뜻의 ‘중동’이란 모호한 지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2022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 ‘주요 2개국(G2)’이 앞다퉈 이들 지역으로 달려가고 있다. 프랑스는 UAE 원수를 접대하기 위해 베르사유 궁의 문까지 열었고, 세계적인 기업들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의 1000조 원 규모 네옴시티에 입찰하기 위해 몸풀기에 돌입했다. 강력한 ‘오일 머니’를 거머쥔 이들의 입지가 더 이상 ‘중동’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중심자’가 되기에는 아직 반(反)민주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사우디 실권을 거머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의혹을 받고 있다. 중동지역 사상 첫 월드컵을 개최한 카타르는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상황이 폭로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고유가를 등에 업고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지만,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서방 세계와 외교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대한 오일 머니 기반 개혁의 리더십 = 이들은 자본에 개의치 않는 개혁 행보로 주목을 받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현대화에 앞장서는 대표주자다. 뜨거운 기온, 사막의 척박함이란 자연환경을 이겨내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네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그간 중동 지역 국가에 사막이란 사실상 ‘버려야 하는 땅’이었다. 하지만 모래 위에 총 길이 170㎞에 달하는 거울형 직선 도시를 만들어 가용 가능한 영토 규모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100만 명, 종래에는 900만 명까지 거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매머드급 프로젝트다.

네옴시티는 빈 살만 왕세자의 ‘탈(脫)석유’ 구상의 일부다. 2016년 산유국 이미지를 벗겠다고 선언한 이후 그는 전기차 생산, 국유 자산 민영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개혁·개방을 하고 있다. 모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사업들이나, 세계 최대 산유국이니만큼 ‘오일 머니’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가 이전 세대와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학파가 아닌데도 2017년 여성이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축구장과 영화관 입장도 허하는 등 다소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국가 문화를 고려하면 파격인 셈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하며 스포츠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타밈 국왕의 2022 카타르월드컵 유치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프랑스 축구팀 파리 생제르맹의 구단주이기도 한 타밈 국왕은 중동 최초의 월드컵 유치국가 타이틀을 얻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그는 불안정한 지역 정세 한가운데에 놓인 카타르가 ‘소프트 파워’를 발휘하길 바라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산유국으로서의 입지뿐 아니라 영향력을 발휘해 외교 무대의 ‘플레이어’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유럽외교협회(ECFR) 방문연구원인 신지아 비앙코는 “(타밈 국왕은) 카타르가 진보하는 국가이고, 현대적인 국가이며, 모든 면에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 개최 비용은 총 2200억 달러(약 3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양다리 외교’ 비판에도 굴하지 않는 실리 추구 리더십 = ‘석유’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다 보니 미·중 경쟁, 러시아 대 서방 구도에서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UAE는 미국의 F-35 전투기 기술을 위해 미국에 로비하면서도, 미국이 지원하는 동맹에 대항해 리비아에서 러시아의 용병 작전에 자금을 대고 있다”며 “때로는 중국 기술 회사와 함께 ‘파괴적인’ 정보 기술도 개발한다”고 전했다. 이른바 ‘균형 외교’, 속된 말로 ‘양다리 외교’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알 나하얀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UAE 자체가 하나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타임은 “UAE는 네트워크를 통해 전쟁과 평화 사이 회색 지대를 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가 미국의 오랜 ‘맹방’이지만 과감히 시 주석에 경도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8일 시 주석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방문하자 보라색 융단을 깔고 축포를 쏘는 한편, 공군 전투기 4대로 시 주석 전용기를 호위하는 등 융숭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다. 유가 논의를 위해 사우디를 방문했다 ‘빈손’으로 귀국한 바이든 대통령 때와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에런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은 사우디와 미국 간 이어져 왔던 ‘일부일처 시대의 종식’이라고 포린폴리시에서 분석했다. 다만 그는 빈 살만 왕세자의 선택이 자신의 카슈끄지 살해 의혹을 정면 겨냥했던 바이든 대통령에게 개인적 감정이 있어서 때문만은 아니라고 봤다. 그가 ‘냉전 2.0’ 시대를 맞아 누구 한쪽 편을 들지 않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도 미국보다 중국, 러시아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히려 그간 경쟁과 반목 위주였던 중동 국가 간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은 지난 5일 타밈 국왕과 카타르 도하에서 회담하고 형제 관계를 강화하자고 약속했다. 단교 선언 이후 5년 만의 만남이다. 사우디와 동맹국인 UAE, 바레인, 이집트는 2017년 6월 카타르가 이란과 밀착하자 단교를 선언한 바 있다.

◇해결 의지 안 보이는 인권의 그림자 = 세 지도자 모두 국제사회의 중앙 정치무대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권 문제에서 ‘마이너스’ 점수만 기록해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타르에서는 월드컵경기장 건설 당시 이주노동자 200명이 마실 물도 없이 4개월 동안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했다는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폭로한 압둘라 이브하이스 카타르최고위원회의 전 미디어 담당은 ‘사기 혐의’로 오히려 수감됐고, 독방에 갇혀 폭행 등 고문을 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300조 원이나 들인 화려한 카타르 경기장 아래 묻힌 인권 탄압 상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를 살해한 의혹을 받고 있다. 카슈끄지는 2018년 2월 혼인신고를 위해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사우디 정보 요원에 의해 살해됐다. 이는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2월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의 배후이며, 그가 카슈끄지 살해 계획을 보고받고 승인했다는 정보 당국의 결론을 공개하기도 했다. UAE에서는 지난해 인권 운동가 알라 알시다크가 영국 런던에서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사망했는데, 이를 두고 UAE 개입 의혹이 일기도 했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상황이란 핑계로 이들의 ‘오일 머니’만 보려 하는 서방에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6일 미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존 베이츠 판사는 카슈끄지의 약혼녀와 시민단체가 빈 살만 왕세자를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소송을 각하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면책특권을 인정한 미 행정부의 공식 입장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행정부는 지난달 이 같은 입장을 법원에 통보했는데, 고유가에 사우디와 관계 개선을 해보려는 시도란 관측이 나왔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 7월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을 환대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베르사유 궁에서 이례적으로 국빈 만찬을 진행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주요뉴스
기사 댓글

댓글 영역은 접힘 상태로 기본 제공되며, ON/OFF 버튼을 통해 댓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AD
AD
AD

ADVERTISEMENT

서비스 준비중 입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