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예 이 자리까지 온지 아나?”… 악역마저 응원하게하는 ‘미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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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진양철役 이성민 화제

꼬장꼬장 사투리 · 구부정한 목
기업 회장모습 완벽하게 소화
출연 분량 따라 시청률 널뛰기

‘나라 위해선 돈 한푼 아까워도
돈 앞 목숨 안아까운게 장사꾼’
극중 대사 묶은 콘텐츠도 인기

병마 싸우는 모습은 연민 불러
재벌 향한 부정적 마음 무력화
“진양철 때문에 본다”대중 열광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기운이 파죽지세다. 지난 11월 18일 전국 시청률 6.1%(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해 14회가 24.9%까지 치솟으며 ‘SKY캐슬’(23.8%)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19.4%(8회)를 기록하며 20% 돌파를 앞둔 시점, 9회 시청률이 16.9%로 뚝 떨어졌다. 이유는 분명하다. 극 중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이성민)의 분량이 줄어든 탓이다. 이성민의 신들린 연기에 “진양철 때문에 드라마를 본다”는 이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진양철은 주인공 진도준(송중기)의 복수의 대상인데 돈을 대하는 그의 철학, 사람을 쓰고 일에 몰두하는 그의 뚝심에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평이 줄을 잇는다. 진양철은 13회에서 사망했지만 회상 장면마다 등장하는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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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굳은 철학…쏟아지는 진양철 어록

포털사이트에서 ‘진양철 명대사’를 검색하면 극 중 그의 대사를 모은 콘텐츠가 즐비하다. “거래를 하자”는 손자에게 “내한테 없는 게 니한테 있어야 그게 거래”라며 “내가 없는 게 있을 거 같드나?”라고 되묻고,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군부 정권이 막을 내린 후 시작된 민주화 시대를 논하며 “니 민주화가 뭔지 아나? 전에는 내 주머니 돈을 노리는 놈이 군인 한 놈이었다면은, 인자는 민간인 세 놈아로 늘었다. 그기 민주화”라고 일갈한다.

장사꾼으로서 돈에 대한 그의 철학은 견고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넘기 위해 재벌 해체를 외치는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선 돈 한 푼이 아까와도 돈 한 푼을 위해선 목숨이 안 아까운 게 우리들 장사꾼”이라며 “장사꾼이랑은 거래를 해야 하는 겁니다”라고 소신을 지키고, “내가 우예 이 자리까지 온 지 아나? 내한테 반기드는 위인은 내 용서한 적이 없다. 그기 내 피를 나눈 형제 자식이라 캐도”라며 서슬 퍼런 집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잣대를 자신에게도 어김없이 들이댄다. 순양그룹의 한도제철 인수가 난항을 겪는 사이, 둘째 아들이 라이벌 회사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별 요동 없이 “장사꾼이다, 글마. 장사꾼이 이문 앞에서 부모 형제, 삼강오륜 다 따지가 우예 돈을 벌겠노”라고 허탈하게 웃는다. 아버지로서는 용서할 수 없지만, 장사꾼 간 경쟁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아들의 반기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독한 신념이다.

◇재벌마저 두둔하게 만드는, 이성민의 힘

엄밀히 말해 진양철은 극 중 미래의 정보를 이용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주인공 진도준의 대척점에 선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다. 그는 진도준에게 “머슴을 키워가 등 따습고 배부르게 만들면 와 안 되는 줄 아나? 지가 주인인 줄 안다”고 가르치고, 한도제철 인수 후 고용승계를 고려하자는 큰아들의 말을 “전쟁에서 이겼으면 전리품부터 챙겨야지, 곳간부터 열어 제끼면 안 된다”며 단칼에 자른다. 게다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재벌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진양철은 재벌가의 개로 살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과거로 회귀해 재벌가 막내아들로 환생한 진도준이 척결해야 할 ‘사회악’이다.

하지만 빙의한 듯 이성민의 연기력과 포개진 진양철의 논리에 오히려 시청자들이 설득당하는 모양새다. 무능력하고 자기 주머니만 챙기기 바쁜 자식들의 아귀다툼에 실망한 후, “도준이가 나와 닮았다”며 진도준에게 점차 마음을 여는 그의 모습은 개과천선 코드로 읽히기도 한다.

11회에서는 섬망 현상을 일으키며 “내 무섭다. 와 내를 죽일라카는데 와아”라고 공포심을 드러내는 진양철의 모습이 등장했다.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을 것 같던 진양철이 병마 앞에서 무력한 노인으로 전락하는 모습은 인간의 나약함을 강조하며 진양철에 대한 연민마저 불러일으켰다. 꼬장꼬장한 사투리와 구부정한 목, 앙 다운 입매로 대변되던 고집이 한순간 무너지는 진양철을 웅변한 이성민의 연기는 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시청자들의 마음의 빗장 역시 무력화시켰다. 선(善)보다는 악(惡)에 가깝지만 진양철을 응원하게 되는 양가감정(兩價感情)은 오롯이 이성민의 힘에서 비롯된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