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세계 속 우리 문화재]화합의 염원 품은 파리의 이응노 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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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

파리시 외곽 동북쪽에 위치한 프레 생제르베(Pre Saint-Gervais) 지역. 이곳엔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이 타계 직전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하던 화실이 있다. 1967년 고암은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2년 반 옥고를 치렀지만, 프랑스 정부와 예술인들의 구명운동으로 사면돼 프랑스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곳에 작은 화실을 열고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다. 고암의 말년 대형작품들도 여기서 창작되지만, 특히 고암을 대표하는 ‘군상’ 연작시리즈가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오래된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 구두제작소였다. 골목 초입의 유서 깊은 로마 시대 샘터가 문화재로 지정돼 이 일대도 아직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고암은 깊은 밤 아틀리에 밑으로 흐르는 오래된 샘물 소리에 종종 귀 기울였는데, 화실 입구에 ‘성수대(聲水臺)’라는 현판을 내건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이 무엇보다 특별한 이유는 고암이 아들(이융세 화백)과 함께 1978년에 작업한 대형 콜라주 벽화(‘가족’, 1.8×3.34m·사진)가 담벼락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고암 작품의 중요 모티브인 대나무도 담벼락에 기대 함께 자라고 있다. 고암이 직접 구워 만든 테라코타와 도자기 파편 등이 담벼락을 가득 메운 채 푸른 대나무 숲과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작품의 산실’에 해당하는 예술가의 집도 중요하지만, 예술가의 손길이 더해진 집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파리시도 이 특별한 벽화를 품은 작은 화실 전체를 중요한 유산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분단과 분열로 얼룩진 고암의 고국 대한민국도 이 유산의 의미를 기억할까? 평생 통일과 화합을 염원한 고암, 그의 벽화 속 ‘군상’은 어깨동무를 한 채 오늘도 골목길을 오가는 행인들을 말없이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