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거구 2명 이상 선출 ‘지역주의 완화’ 기대… ‘다선에만 유리’ 지적도[Who, What, Why]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제 개편을 언급한 이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본격적 논의에 들어가는 등 정치권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20년 4·15 총선 당시 경남 남해읍 해양초에서 한 유권자가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투표를 하는 장면. 뉴시스

■ What - 화두 떠오른 중대선거구제

선거구 키우고 승자독식 막아
호남선 국민의힘·영남선 민주
소수의석 생기며 극한대립 해소

중선거구제 일본, 계파정치 악화
거대양당 나눠먹기 심화 우려도

여야 선거제 개편 당위성 공감대
300인 의원정수·비례대표제 등
디테일 조정에 정치개혁 성패 달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선거제도 개편의 불씨를 댕기면서 정치권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여야가 선거구제를 변경하려면 제22대 총선 1년 전인 오는 4월 10일까지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소선거구제(지역구에서 1명을 선출)와 단순다수제(후보 1명을 선택하고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가 결합된 현행 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는 데는 정치권 안팎의 공감대가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4년마다 백가쟁명식으로 논의만 진행되다가 매번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4년마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 왔지만, 이번엔 정말 다르다”며 “윤 대통령이 화두를 던져 국민의힘도 논의에 참여할 수밖에 없고, 야당에서도 지난 국회의원 총선거 때 위성정당 논란을 재연해서는 안 된다는 성찰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지역주의·진영정치 완화할 중대선거구제=윤 대통령은 뭉뚱그려 중대선거구제라 했지만 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는 다르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당선인만 선출하는 것을 소선거구제, 2∼4인을 선출하는 것을 중선거구제로 분류하고 5인 이상을 선출하는 제도를 대선거구제로 칭한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때 “개인적으로는 국민들의 대표성이 제대로 보장되도록 중대선거구제를 오랫동안 정치하기 전부터도 선호해왔다”고 언급했다. 올해 한 인터뷰에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힌 것에 비춰 윤 대통령은 중선거구제를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제시한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승자 독식으로 인한 과다한 사표(死票), 대표성 약화 △양극화된 정치 △극심한 지역주의 등 크게 세 가지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이 같은 소선거구제의 문제는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단 구체적인 제도의 설계가 어떻게 이뤄지냐에 따라 실효성 있는 변화인지 여부가 갈린다.

문화일보가 11일 지난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분석한 결과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서울과 경기·인천 지역구 출마 후보가 얻은 표의 총합은 771만2000표가량이었고 미래통합당은 약 592만5000표였다. 군소 후보들을 제외하면 민주당은 56.6%, 통합당은 43.4%였다. 하지만 실제 수도권 121석 가운데 민주당은 103석으로 85.1%를 점유했고, 통합당은 16석에 그쳤다. 승자 독식 선거제도에 따라 1위 후보에게 적은 표차로 패배한 2위 후보 표는 모두 사표가 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통합당은 영남에서 55.9%, 민주당은 호남에서 68.5%를 득표했지만 실제 의석은 각각 89.2%, 96.4%를 차지했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선거구를 크게 만드는 대신 한 선거구에서 2명 혹은 3∼4명을 뽑을 경우 수도권에서는 여야 후보가 고루 당선될 수 있고, 호남에서는 민주당 다수에 정의당 소수, 영남에서는 국민의힘 다수에 민주당 소수의 의석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표 방지와 지역주의 구도 완화 효과가 동시에 이뤄지는 셈이다. 중선거구제는 극단적 진영 정치의 문제점을 해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최근 “소선거구제하에선 공천만 받으면 끝”이라며 “어차피 양자택일이기 때문에 경쟁 후보에 대한 혐오 감정을 불러일으켜 반사이익을 얻으면 되는 구조이다. 그래서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호남처럼 공천이 곧 당선인 상황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여야 협치도 부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만 바꿔도 표의 등가성, 비례성, 대표성을 실현하고 국민들의 선택 폭을 넓혀줄 수 있다”며 “거대 양당 대결 구도를 완화하는 장점까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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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정치 부활·거대 양당 나눠먹기” 우려도=반면, 현행 선거구제 개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중대선거구제가 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중대선거구제 개편은 이뤄질 수 없다”고 단언하며 일본의 사례를 참조하라고 언급했다. 실제 일본은 1928년부터 1993년까지 중선거구제를 채택했다가 계파 갈등과 부정부패의 주범으로 인식되며 1996년 중의원 선거부터 소선거구제로 전환했다. 동일 선거구에 복수의 같은 당 후보가 출마할 수 있기 때문에 당내 계파 간 나눠먹기식 공천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할 경우 ‘동일 선거구 내 복수 공천 금지’ 조항을 삽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는 결국 정당의 전체 공천 인원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져 현역 의원들의 동의를 구하기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진보 정당과 시민단체 등 ‘제3 세력’을 중심으로는 2인 혹은 3인 선거구제로 전환할 경우 사실상 거대 양당의 나눠먹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2인 선거구제로의 개편은 소선거구제 단점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두 당의 나눠먹기는 심해지는 최악의 제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진들에 유리한 구도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넓은 지역구에서 여러 후보가 경쟁하면 결국 인지도 높은 후보, 유명인이나 다선 의원들이 살아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디테일’에 갈릴 유불리, 개편 전망은 불투명=4년 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개선을 꾀했지만 결국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위성정당 ‘꼼수’로 이어졌던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다.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최소화하는 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다수다. 단, 단순하게 지역구를 넓혀 뽑는 인원을 늘리는 중대선거구제만으로는 선거제도 개편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학계와 정치권의 중론이다. 결국 300인에 묶인 의원 정수, 꼬일 대로 꼬인 비례대표제와 연동해 제도의 ‘디테일’(세부 사항)을 어떻게 꾸리느냐에 따라 정치 개혁의 승패가 갈릴 전망이다. 자연스레 정당 간 유불리도 확 갈린다. 당장 정치 개혁 관련 시민단체들이 논의에 참여해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 박주민 민주당 의원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6∼11인의 대선거구제를 채택하는 대신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득표율 대비 의석수를 획득하지 못한 정당의 낙선한 후보자 순으로 배분한다. 도시의 경우 중대선거구제를, 농촌은 지역 대표성 등을 감안해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도농 복합형 선거구제도 타협안으로 제시된다. 단순다수제 대신 선호투표제(전체 후보의 선호를 매기는 방식)를 도입하자거나 내년 총선에 일부 지역에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대선거구제는 기본적으로 수도권의 민주당 의원들, 영남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대할 수밖에 없는 안”이라며 “이들이 마냥 반대만 할 수는 없는 안을 절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