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치과에서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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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2-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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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묽어질수록 두 귀는 단단해진다/ 내 목소리만 크게 들렸다// 쏟아진 그림자가/ 네 발밑에서 멎은 줄도 몰랐다// 나는 나에게 도망할 수 없어서/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천국은 내내 비수기였다’

- 전수오 ‘열매의 모국’(시집 ‘빛의 체인’)



설 연휴 직전 오른쪽 어금니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얼른 낯빛부터 숨겼다. 치과 가기 두려워 흔들리는 이를 숨기는 어린아이처럼. 아니, 꼭 같은 심정이다. 치과 치료의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니까.

막상 명절이 지난 뒤에는 밀린 일이나 약속 등을 핑계 삼아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통증을 피해 씹는 요령이 생기고 통증에도 익숙해졌다. 슬금슬금 ‘이대로 견뎌 볼까’ 미련한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으나, 눈 가리고 아웅 놀이일 뿐이다. 있는 일이 없는 일이 될 수 없으니 결국에는 지독한 통증을 얻어 도망치듯 치과를 찾아갔다. 그사이 충치가 꽤나 진행됐고, 신경치료까지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의사의 걱정을 들으며 후회해도 때는 늦고 말았다. 그러나 막상 요란한 드릴 소리를 견디며 치료받는 동안, 이게 뭐 그리 무섭다고 피하려 애를 썼을까 의아해졌다. 물론 어렸을 때보다 기술도 도구도 더 발전했을 것이며, 치료마다 통증의 크기 또한 다르겠으나, 그간 막연히 가졌던 두려움에 비하면 견딜 만하다 못해 별일 아니지 않은가 싶었다.

생각해보면, 온갖 풍파랄 것까진 아니어도 살면서 각양각색의 부침을 겪었을 터였다. 치과 치료마저 사소하게 만들 고충은 널리고 널렸다. 어쩌면 나는 내 짐작보다 꽤 단단한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싶고, 조금 용감해지는 것도 같았다. 치과를 나설 즈음 치료 덕에 얻은 새 통증이 오른쪽 어금니를 괴롭혔으나, 걱정도 두려움도 없었으므로 그저 후련하기만 했다. 그래도 치과는 무섭다. 여전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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