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저질 ‘아무 말 대잔치’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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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배 정치부 부장

정치는 ‘말’이다. 정치인의 말은 신문의 헤드라인이 되고 뉴스의 제목이 된다. 김춘수 시인이 그 유명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던 것처럼 말은 정치인의 입을 거쳐 정치가 된다. 그래서 정치부 기자들은 밤낮으로 정치인의 말을 쫓는다. SNS, 출근길 한마디, 아침 라디오 시사방송 출연, 최고위원회의나 원내대표회의, 본회의가 열린다면 대정부 질문에서의 발언 등은 기본적으로 기사의 소재가 된다. 기자들은 비보도 약속을 전제로 진행되는 점심·저녁식사자리 등 사석에서 정치인들의 말을 기사에서 직접 인용하지는 않지만 잘 기억해 뒀다가 기사의 흐름에 반영하기도 한다.

말이 정치가 되다 보니 말의 수위가 한계를 모르고 점점 높아진다. 특히, 여야가 접점 없이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는 상대 세력 비방이 거의 ‘막장’ 수준에 와 있다. 선명성 경쟁인지는 몰라도 더 강하고 자극적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각 진영의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부응하고, 또 그렇게 해야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가 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난 6일 대정부 질문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은 저속하면서 맥락도 없는,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의 한 장면이었다. 정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추궁했고 한 장관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언급하며 답변하자, 정 의원은 “장관! 장관은 참기름 들기름 안 먹고 아주까리기름을 먹냐”고 발끈했다. 한 장관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정 의원은 “왜 이렇게 깐족거리냐”고 했다. 정 의원이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내뱉는 말은 너무 품격이 떨어져 차마 보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는 ‘유주얼 서스펙트(usual suspect·상습범)’다.

지난 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표결 전 30분간 긴 연설을 했던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의원들을 향해 손바닥을 보이며 “반사”라고 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발언을 되돌려 준다는 의미로 하는 행동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행동인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유치한 퍼포먼스였다.

반면, 9일 진행된 대정부 질문은 위의 두 사례와는 대조적이었다. ‘비동의 강간 문제’를 놓고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한 장관의 정책 논리 대결은 모처럼 품격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 의원은 “저는 김건희 여사나 천공 얘기 같은 건 안 하고 정책 질문만 하겠다”고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지금처럼 자괴감과 두려움이 엄습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정치와 국회에 대한 국민의 깊은 불신은 정치인들의 무례한 막말에서 연유하는 바가 크다”며 ‘국회 참회록’을 썼다.

“배우는 훌륭한 대본이 있어야 빛이 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대본도 형편없고 출연진도 형편없습니다. 그냥 삼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나라 걱정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하는 배우 김혜자는 최근 에세이 ‘생에 감사해’에서 정치인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정치인들이 좀 새겨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