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조국을 가슴에 묻은채… 이별 아파했던 ‘피아노의 시인’[이 남자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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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쇼팽, 연습곡 ‘이별의 노래’ 작품 10-3

빈으로 떠나기전 고별무대
짝사랑에 끙끙앓으며 연주
서정 가득한 아련함 돋보여

스무 살이 되던 해, 쇼팽(1810~1849)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조국을 무척 사랑했지만 유럽의 변방인 폴란드는 안타깝게도 위대한 음악가 쇼팽을 담아내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1830년 조국을 떠나기 전, 쇼팽은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고별 연주회를 가졌다.

이날 연주회에서 쇼팽은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번’(Chopin Piano Concerto No.1, Op.11)을 연주했고, 소프라노이자 음악원의 한 동기생이 찬조 출연해 로시니 오페라 아리아 한 소절을 불렀다. 이 여인은 다름 아닌 쇼팽의 첫사랑 콘스탄차 글라드코프스카(1810~1889)였다.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쇼팽은 같은 나이의 소프라노 학생인 콘스탄차를 사랑하게 된다.

어느 날 쇼팽은 자신의 속내는 숨긴 채 ‘내가 너의 피아노 반주자가 되어주겠노라’고 자청했고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두 사람이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쇼팽의 사랑 또한 깊어만 갔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쇼팽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 “드디어 나의 이상형을 만난 것 같아. 하지만 아직 6개월 동안이나 혼자 끙끙 앓고 있어. 나는, 종종 그녀의 꿈을 꾸곤 해. 그리고 마음속의 그녀를 그리면서, 나의 새로운 협주곡(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아다지오 악장을 작곡했어.”

쇼팽이 친구인 티투스 보이치에호프스키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쇼팽 하면 피아노, 피아노 하면 쇼팽’이라고 불릴 만큼 20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작품 목록 대부분은 피아노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작곡된 가곡의 수만 무려 11곡에 달한다. 아마도 소프라노였던 그녀를 위한 곡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쇼팽은 고백은커녕 단둘이서 반주를 맞추던 그 순간조차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말을 건네지도 못했다. 아마도 쇼팽은 곧 타국으로 떠나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기에 그녀에 대한 사랑을 단념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두 사람의 이별을 알리는 조국에서의 마지막 고별무대, 1부에서 쇼팽은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고 이어서 2부에서는 콘스탄차가 무대에 올라 로시니의 오페라 ‘호수의 미인’ 중 아리아 ‘마음속에 넘치는 사랑’을 불렀다.

그리고 쇼팽은 다시 한번 무대에 올라 조국 폴란드에 작별 인사라도 하듯 ‘폴란드 민요에 의한 환상곡’(Chopin Fantasy On Polish Airs In A, Op.13)을 연주했다.

마침내 무대의 막이 내리자 콘스탄차는 그날의 공연에서 머리에 꽂고 있던 장식용 리본을 쇼팽의 손에 쥐여주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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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발견된 콘스탄차의 일기장을 보자면 두 사람의 애틋한 첫사랑에 가슴이 아려온다. ‘쇼팽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나와 눈동자를 맞추고 있었고 나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 내 입술을 덮어줄 따뜻한 키스를. 그러나 쇼팽의 입술은 다가오지 않았다.’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다시는 조국의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39살의 나이로 타향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쇼팽. 그의 유품 속에서 고별 연주회 날 그녀에게 건네받았던 빨간 리본이 발견되었다. 쇼팽은 그녀의 리본을 편지 꾸러미를 묶는 리본으로 사용하며 평생 간직했던 것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연습곡 ‘이별의 노래’ 작품 10-3

이 작품을 두고 쇼팽이 “내가 만든 멜로디 중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을 만큼 쇼팽 특유의 서정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곡은 쇼팽이 자신의 첫사랑 콘스탄차를 떠올리며 작곡했다고 알려진 작품이지만,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었던 이별이란 모티브는 그저 사랑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조국 폴란드와의 이별 또한 담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