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의 시론]일본에 사죄·배상 압박할 필요 없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2-24 11:52
  • 업데이트 2023-02-2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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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주필

3·1 운동은 대한민국의 뿌리
현 한일관계에도 좋은 나침반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중요

식민지 콤플렉스 날려버릴 때
일본 혐한이 되레 열등감 산물
징용 대위변제 땐 도덕적 우위


3·1운동은 명실공히 근대국가 대한민국의 뿌리다. 1919년까지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의 나라는 있었지만, 빈부귀천 남녀노소 ‘모두의 나라’는 아니었다. 일본 식민지배에 맞선 시위가 일거에 근대국가 의식을 불러일으켰고, 그 직후 임시정부가 채택한 민주공화정이 대한민국의 국체가 됐다.

104년이 지난 지금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독립국임을 밝힐 것’을 천명한 독립선언서 정신을 되새기면서 21세기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국가 반열에 올랐다. 한·일 관계는 대등해졌고, 적잖은 분야에서는 일본을 넘어섰다. 그런데 아직도 ‘반일 무죄, 친일 매국’ 선동이 만만치 않다. 망국을 반복하지 말자는 각오를 다지는 일이면 괜찮은데, 반대로 안보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독립선언서는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를 예견한 듯 미리 꾸짖었다. ‘현재를 수습하고 미래를 대비하기에 바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따질 여유를 갖지 못하노라, 일본의 신의 없음을 단죄하려 아니하노라, 자신을 채찍질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여유를 갖지 아니하노라,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건설일 뿐이다.’

장구한 역사 속에서 인접국끼리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도 현재의 평화를 지키고 미래의 번영을 위해 아픈 과거는 안으로 보듬는다. 그런데 한·일 관계는 정반대다. 직접적 계기는 위안부 및 징용 배상·위자료 판결을 둘러싼 충돌이다. 그 근원에 1910년 병합조약의 절차적 불법성 문제가 있다. 옥새가 찍히지 않았다거나 순종의 본의가 아니었다는 주장 등이 근거다. 썩은 나무의 마지막 도끼질에 사용된 도끼가 수입품이냐 밀수품이냐의 문제와 마찬가지다. 학자의 탐구 영역이나 시민단체 운동 대상이 될 순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불법 도끼가 아니었다면 나무는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행동하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물론 일제 침략 자체는 불변의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선언서의 ‘과거 불문, 현재 수습, 미래 대비’ 정신은 훌륭한 나침반이다. 그런 접근을 가로막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일본의 불충분한 사죄와 배상, 둘째는 독도 영유권 주장, 셋째는 군사 재무장 우려다. 첫째 문제는 어차피 시간을 두고 대처해야 할 과제다. 한국 국력이 증대하면 그만큼 해결된다. 징용·위안부 문제가 1990년부터 본격화한 것 역시 한국의 국력 신장과 탈냉전에 힘입은 바 크다. 둘째와 셋째는 한일 안보 공조가 확고할수록 그만큼 완화될 수 있는 문제다.

더 근본적으로, 한국민은 이제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조선이 전쟁에 져서 일제 식민지가 된 것도 아니고, 임시정부가 전쟁에 이겨서 독립한 것도 아니라는 애매한 사실이 한국민의 정서를 더 착잡하게 했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하면서 반세기 만에 일류국가 일등국민 반열에 올라섰다. 오히려 일본에서 콤플렉스가 감지된다. 식민지배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고 한국 재건을 도와주려 했던 ‘전전·전중 세대’ 대신 ‘전후 세대’가 전면에 등장할 시점에 한국에 밀릴지 모른다는 열등감이 보태져 혐한 정서가 악화했다.

과거사를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그러나 더 이상 일본에 ‘돈’과 사죄를 애걸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해결하기에 충분한 경제력과 외교력을 갖췄다. 엎드려 절 받기 식의 사과는 차라리 거절하고 따끔하게 훈계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지키는 게 낫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결단해야 한다. 당면 쟁점인 ‘징용 배상’도 한국 내부에서 ‘대위변제’하는 방안을 찾고, 일본의 책무를 상기시키면 된다. 정부의 직접 출연이 대일 구상권 등의 또 다른 쟁점을 만들 수 있는 만큼 민간 중심으로 하는 게 낫다. 일본이 동참하고 말고는 그들의 문제로 남겨두면 된다.

일본이 정점을 지났다는 ‘피크 재팬’, 중국은 지금이 정점이라는 ‘차이나 피크’ 분석이 유력하다. 한국이 조금만 잘하면 우뚝 설 수 있다. 과거 문제를 극복하고 한미일 3국의 안보·경제·가치동맹을 주도하면, 세계 중심국이 되는 날도 멀지 않다. 반대로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현세대는 조상과 후손에게 역사적 죄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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