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맨몸의 진심 ‘피지컬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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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구 체육부장

K-콘텐츠의 힘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100’이 난리다. 지난 1월 넷플릭스를 통해 처음 공개된 이 프로그램은 비영어권 TV 부문 7위에 오르더니 2월 첫째 주 2위, 둘째 주 1위에 이어 셋째 주까지 2주 연속 선두를 차지했다. 2021년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이은 또 하나의 K-히트다.

‘피지컬: 100’은 100명의 참가자가 상금 3억 원을 놓고 다양한 서바이벌 경기로 승부를 가르는 예능. 22일 최종 9회가 공개된 가운데 마침내 100 대 1의 경쟁을 뚫은 3억 원의 주인공이 가려졌다. 하지만 누가 우승을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관심은 그간의 과정에 있었다. 이날도 ‘형벌’ 같은 경기가 피를 말렸다. ‘톱5’ 진출을 위해 경쟁자들이 100㎏ 공을 언덕 위로 굴리는 게임을 하다가 거의 초주검이 됐다. 파이널 게임에선 몸이 묶인 상태로 자물쇠를 열고, 무겁고 긴 로프가 다 풀릴 때까지 당기다가 거의 실신 지경에 이르렀다. 웃음과 재미를 위한 게임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극기훈련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체력과 스포츠맨십이 승패의 관건이 됐다. ‘피지컬: 100’이 처음 나왔을 때는 남녀 출연자들의 외모에 시선이 쏠렸다. 남자들의 빨래판 복근, 여자들의 매끈한 몸매가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극한의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외모나 결과보다는 과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의 도전과 열정, 실패와 성공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전 세계가 주목했다.

따지고 보면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여러 가지 파격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의 예능판이었다. 드라마에 예능과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더해 영리하게 변주했다. 장호기 MBC PD가 만들고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변칙을 썼다. 기존의 방송국 문법으론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한국어 예능은 글로벌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땀이 흥건한 ‘보디랭귀지’로 무너뜨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빛난 이유는,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스포츠 본연의 덕목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고, 지더라도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이 새삼 신선했다. 요즘의 혼란한 정치 상황과 극명하게 비교됐다.

출연자들의 땀과 진정성은 시청자의 심장을 뛰게 했다. 올림픽을 보며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체험을 한 것과 똑같은 경험이다. 실제로 ‘피지컬: 100’에는 국가대표 선수가 다수 출연했다. 이종격투기의 추성훈은 말할 것도 없고, 스켈레톤 윤성빈, 체조 양학선, 레슬링 장은실 등이 참가해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겨뤘다. 최종 우승한 우진용도 스노보드 국가대표 출신의 크로스핏 선수였다. 우리는 그들이 ‘국대급’ 몸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지를 알고 있다. 10년 전 태릉선수촌 시절, 현장에서 ‘국대’들의 엄청난 피지컬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선하다. 맨손으로 밧줄을 타고 오르는 레슬링 선수들의 복근, 타이어 고무줄과 몇 시간이고 씨름을 하는 유도 선수들의 팔뚝 등 아름다움을 초월해 숭고하기까지 한 피지컬에 매료됐다.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의 감격이 거의 잦아들었다. 그때의 진한 감동이 다시 그립다. 마침 다음 달엔 ‘야구월드컵’으로 불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린다. 아마 그때도 실종된 여야 협치는 여전히 실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WBC 선수들이 솔직한 땀으로 우리의 답답한 속을 뚫어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