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오현, V리그 첫 600경기 출전… “리베로는 나의 운명”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오현 플레잉코치는 꾸준한 체력 훈련을 통해 여전히 코트에 나서고 있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제공

■ 현대캐피탈 플레잉 코치 ‘45세 현역’

초등생때 입문…두각 못나타내
FIVB ‘리베로 제도’ 도입하자
과감하게 전향 새로운 길 찾아

유연성 키우고 체력훈련 매진
‘45세 프로젝트’ 제대로 효과

“23년간 부상없이 뛰어 감사
올해 10번째 우승반지 낄래요”

천안=오해원 기자 ohwwho@munhwa.com

“리베로는 나의 운명 같아요. 지난 23년간 부상 없이 뛸 수 있었던 것에 가장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10번째 우승 반지가 욕심납니다.”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현대캐피탈의 여오현(45) 플레잉코치는 1978년생. 국내 4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고령 선수다. 여 코치는 지난달 21일 V리그 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 600경기 출전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3일 현재 정규리그 601경기에 포스트시즌 75경기, 컵대회 55경기까지 더하면 총 731경기에 이른다. 여 코치는 실업배구 시절이던 2000년 삼성화재에 입단, 2005년 출범한 V리그와 함께 지난 23년간 배구 코트를 지킨 레전드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최강이다. 올 시즌 남자부 리시브 1위(53.26%). 스무 살 가까이 어린 오은렬(2위·43.20%·대한항공)을 훌쩍 앞선다.

지난달 27일 현대캐피탈 연습장인 충남 천안의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에서 만난 여 코치는 짧은 머리 사이로 서리가 앉은 듯 흰머리가 많이 보였다. 그러나 조카뻘인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며 땀 흘리는 모습에서 나이를 잊게 했다. 여 코치는 “큰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운이 좋은 선수”라며 “나보다 어린 후배들도 이미 은퇴해 지도자를 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좋은 팀에서 좋은 감독님, 동료와 함께 행복하게 배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활짝 웃었다.

여 코치의 600경기 출전은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의 ‘45세 프로젝트’가 만든 결과다. 최 감독이 현역 시절 만났던 한 외국인 선수가 40세가 넘어서도 왕성하게 뛰는 걸 본 뒤 여 코치가 45세까지 기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단순히 감독의 구상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프로젝트였다. 여 코치가 적극적으로 부응했다.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필라테스를 배우고, 탄수화물을 줄여 식단을 관리했으며 끊임없이 체력 훈련을 병행해 모범이 됐다. 최 감독은 “여 코치는 다음 시즌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 재계약을 긍정적으로 준비해야 할 듯하다”고 칭찬했다.

사실 여 코치는 처음부터 리베로가 아니었다.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다”는 그의 표현대로 리베로 포지션은 위기의 순간에 찾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지만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여 코치는 홍익대 2학년 때 리베로로 전향했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수비전문선수인 리베로 제도를 도입했고, 리시브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175㎝ 단신의 아포짓 스파이커에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대학 무대 최고의 리베로가 된 여 코치는 2000년 12월 삼성화재의 유니폼을 입은 뒤 줄곧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덕분에 여 코치의 두 아들도 현재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배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최근엔 코트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2020∼2021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리베로 후배 박경민 때문이다. 여 코치는 “(박)경민이를 보면 같은 나이의 나보다 훨씬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경민이 덕에 내가 모든 경기에 뛰어야 한다는 욕심을 내려놓았고 몸 관리도 더욱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의 영원한 현역에게도 은퇴 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10번째 우승이다. 여 코치는 V리그 통산 삼성화재에서 7번, 현대캐피탈에서 2번이나 우승 반지를 끼었다. 그는 “(올 시즌엔) 10번째 우승을 하고 싶다. 현대캐피탈이 나를 필요로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코트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오현 현대캐피탈 플레잉코치는 지난달 21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 도드람 2022∼2023 V리그 5라운드에서 정규리그 600번째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