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서도 인생서도 ‘소울메이트’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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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만에 장편 연출 민용근 감독

촉망받는 독립영화 감독에서
오랜 공백끝 상업영화로 컴백

환경·성향 다른 두 10代소녀
10여년 걸친 동경·우정 그려

“창작욕 꺾이며 멈췄던 순간에
中영화 리메이크 제안 받게돼
원작보며 ‘소중한 존재’ 깨달음”

2011년 데뷔작서 만난 배우와
영화 작업중 연인 발전해 결혼


“영화를 오랜만에 만들고 싶어 하는 감독은 없어요.” 2011년 영화 ‘혜화, 동’으로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인상적인 데뷔를 한 민용근(사진) 감독에게 미래는 보장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다음 장편 영화를 내놓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영화를 영영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그에게 찾아온 영화 ‘소울메이트’(15일 개봉)는 여러모로 그의 삶과 긴밀히 연결된 영화 이상의 영화다.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민 감독에게 촉망받는 독립영화 감독에서 지난한 세월을 지나 상업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부터 물었다. 그는 “‘혜화, 동’을 찍은 뒤 바로 다음 영화를 준비했다. 상업 영화로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안 됐다”며 “‘하고 싶다’가 아닌 ‘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작업해야 했고 창작욕이 꺾여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을 만든다는 재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고 이러다 영화를 영영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멈췄다”고 회고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겠던’ 2019년, 그는 저우동위(주동우) 주연의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리메이크해보잔 제안을 받았다. 민 감독은 “여성 서사에 자신이 없어 처음엔 고사했다”고 운을 뗐다. 그런데 원작을 두 번째 봤을 때 마음에 울림을 느꼈다. “인생을 돌고 돌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 영화로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소울메이트’의 한 장면.

영화는 가정환경과 성향이 확연히 다른 미소(김다미)와 하은(전소니)이 서로를 동경하고 미워하며 끝내 닮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10대 시절부터 서울로 상경한 서른 초반까지 연기한 두 배우의 미묘한 심리 변화가 매력적이다. 대상을 사려 깊게 바라보고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그의 장기가 발휘됐다. 민 감독은 “원작과 달리 삼각관계를 줄이고 두 여성 캐릭터가 서로를 통해 자아를 찾는 과정을 정서적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영화에선 하은이 대상을 똑같이 그린다는 설정이 주요하게 활용된다. 결국 하은과 미소를 이어주는 것도 그림이다. 민 감독은 “어떤 대상을 똑같이 그린다는 건 대상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그 대상의 마음을 그렸다는 것”이라며 “미소와 하은이 오랫동안 깊은 관계로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바라봤기 때문이라는 점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민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혜화, 동’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유다인과 만나 결혼했다. 영화 속 미소와 하은이 돌고 돌아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음을 깨닫듯 10년이 지나 ‘소중한 단 한 사람’을 알아보게 된 것. 그는 “시나리오 막바지 작업 중에 만났을 때 ‘아 이 사람이구나’를 서로 깨달은 것 같다”며 “추상적 감정을 갖고 영화를 만드는 동안 내가 영화로 얘기하고자 했던 감정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영화가 현실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제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영화라고 생각해요.”

‘소울메이트’가 그의 창작욕에 불을 지핀 걸까. 민 감독은 곧바로 다음 행보를 이어간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용 10부작 드라마 ‘유쾌한 왕따’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인 민 감독은 “좀 거칠다.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장르극”이라며 “제가 꼭 섬세한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며 웃었다.

독립영화로 시작해 돌고 돌아 상업 영화판으로 성큼 들어선 민 감독에게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를 물었더니 “분명히 다르지만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선 다르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혜화, 동’을 만들 때 제가 살면서 느꼈던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소울메이트’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조금 더 쉽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진입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