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참여 사회변혁 앞장…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3-15 08:55
  • 업데이트 2023-03-15 09:42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립습니다 - 박준승 선생(1865∼1927)

박준승 선생은 1865년 전북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농업에 종사하던 선생은 20대에 이르러 현실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개항 이후 물밀 듯이 몰려드는 외세와 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점차 우국 청년으로 성장했다. 특히 일본과 청국 상인들이 공산품을 가져와 비싸게 팔고 그 대신 싼 값으로 쌀을 구입해 대량으로 반출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피폐해진 농촌 현실은 선생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도 당시의 지배층은 도탄에 빠진 민생 문제를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 급급했다. 나아가 외세와 결탁해 일반 민중에 대한 수탈을 강화했다. 농업을 생업으로 하던 선생은 그 같은 외세와 봉건 지배층의 침탈을 목격하고 체험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반(反)침략, 반(反)봉건 운동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기 보국안민(輔國安民)을 기치로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제창된 동학사상은 본래 종교이념이었지만, 외세 침략이 구체화하고 봉건 지배층의 수탈이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사회 변혁이념으로 바뀌면서 민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선생은 민중의 입장에서 반침략, 반봉건의 동학사상에 공감하게 됐고, 그에 따라 1891년 동학에 입교했다. 이 시기 동학은 제2대 교주 최시형의 헌신적 노력으로 교리를 정리하는 한편 전국적인 포교조직을 구축해 비약적인 교세 확장을 이뤄 가고 있었다.

1894년 1월 고부 민란을 계기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교도이자 농민대중의 한 사람으로 운동에 동참했다. 그리하여 선생은 호남 일대에서 생명을 담보로 투쟁했지만, 일제의 간섭과 탄압으로 운동이 실패함에 따라 외세를 몰아내고 봉건체제를 타파해 자주적 근대민족국가를 건설하려던 선생의 꿈이자 당시 민중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이후 선생은 이른바 ‘동학잔당’을 색출해 잔혹하게 학살하는 일제와 친일 정권의 촉수를 피해 여기저기를 전전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결코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동학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1897년 전라도 지역의 동학 접주로 선임된 선생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와해된 포교조직을 재건하고 교세를 만회하기 위해 혼신의 정력을 쏟아부었다. 선생은 전라도의 유력한 접주로서 동학의 갑진(甲辰)개혁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손병희와 박인호를 추종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주권수호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대는 일제의 무단정치가 자행되는 암흑과 같은 시기임에도 천도교는 각종 교리강습회와 수련회를 개최해 암암리에 민족의식을 배양하면서 민족의 앞날을 열어가고 있었다. 이후 선생은 1916년 천도교 전라도 도사에 임명돼 종교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과 배일사상을 전파해 갔다. 3·1운동 계획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인 2월 24일 천도교 전라도 도사로서 1월 21일 승하한 고종황제의 국장에 참배하기 위해 상경했다. 그리고 3·1운동 계획에 참여해 손병희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등에 서명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앞에 놓고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선생을 포함한 민족대표들은 출동한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경무총감부로 압송됐다. 선생은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에도 천도교 교역자로 활동하면서 재차 독립운동의 기회를 모색하다가 1927년 3월 24일 염원하던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사선문화제전위원회는 선생을 기리기 위해 15일 임실문화원 강당에서 3·1 만세운동 제104주년 기념 ‘임실 3·15 만세 독립운동의 전개와 민족대표 박 선생의 삶’ 추모 문화공연 및 특별 강연회를 개최한다. 이날 특별 강연회는 이명화 독립기념관 연구소장의 강연과 조상진 전북일보 논설 고문의 토론이 진행된다. 이날 행사에는 만세운동 현장인 임실 청웅에서 지역 주민과 유족 등이 기념식과 만세운동 재현 추모 공연 등을 이어간다. 필자는 박 선생뿐만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이석용 의병장과 28 의사의 넋을 기리는 소충사 제례 추모 공연과 호남지역의 의병 활동, 독립 만세운동의 전국 학술 세미나, 독립운동가 지원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양영두 사선문화제전위원회 위원장

‘그립습니다·자랑합니다·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