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강제징용 해법은 對日정책 대전환…‘제2 김대중-오부치 선언’ 되나[Deep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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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1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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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창수의 Deep Read - 한·일 셔틀외교 재개

‘제3자 변제’ 방식은 기존 틀·벽 깨기 전략… 피해자 콤플렉스 벗어나 국격에 맞는 전략 공간 구축 의지
尹 대통령 결단은 ‘합리적 행위자 모델’… 정상회담 성과, 日 호응, 피해자·야당 반대 설득이 성패 가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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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함으로써 12년여 만에 한·일 셔틀외교가 복원됐다. 이는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전격적으로 내놓으면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 대전환은 국가의 의사결정과 관련한 ‘합리적 행위자 모델’로 설명된다. 윤 대통령의 제3자 변제 해법과 이에 대한 일본의 호응이 장차 ‘제2의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발전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尹 대일 정책의 특징

3·1절 기념사와 강제징용 문제 해법 등에서 드러난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로 일본을 인식했다. 이전 문재인 정부가 일본을 ‘방해자’로 인식한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윤 대통령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의 지배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이 협력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라고 여긴다.

둘째, 윤 정부는 높아진 한국의 국격에 맞게 대승적 차원에서 선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고 일본은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는 시늉을 하는 악순환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피해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국격에 맞게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셋째, 구호뿐인 명분에서 벗어나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윤 정부는 현재의 국제관계를 고려할 때 피해자가 배상금을 먼저 받게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피해자들의 권리 실현 방법을 외면한 채 일본의 사죄가 우선이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윤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은 현금화 조치를 법적으로 완결해 한·일 관계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한국이 경제적 위상에 상응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일 관계를 선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을 천명한 셈이다.

이런 흐름에서 실현된 한·일 정상회담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창안하겠다는 전략적 구상의 시작으로 해석된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서도 두 나라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로 나아가자고 천명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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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행위자 모델

대외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의사결정 설명 모델엔 합리적 행위자 모델, 조직과정 모델, 관료정치 모델 등 3가지가 있다(그레이엄 앨리슨 & 필립 젤리코, ‘결정의 본질’).

합리적 행위자 모델에서 의사결정 주체는 최고 지도자로 수렴되는 국가·정부이며, 조직 구성원은 이 목표를 공유하면서 합리적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조직과정 모델에서는 정부나 국가를 반(半)독립적인 조직들의 집합체로 보고, 조직 운영의 표준절차(SOP)에 따라 정책을 결정한다고 본다. 관료정치 모델은 부처의 이익이 국가 이익을 우선하며, 구성원 간 경쟁·타협·흥정·연합 등 정치적 게임이 대외정책을 만든다는 관점이다.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일단 합리적 행위자 모델로 설명된다. 다만 정책의 성패 여부는 정상회담의 성과와 일본의 적극적인 호응, 그리고 피해자 설득을 포함한 국내 환경적 요인의 극복에 달렸다. 제3자 변제에 따라 판결금을 수령하기 원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공탁 무효 소송을 할 수 있고, 그 유효성 여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윤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정권교체 후에도 구상권 행사를 할 의지가 없다는 신뢰가 계속될지도 불확실하다.

국내 정치 환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서 윤 정부의 과거사 관리는 피해자와 야당을 어떻게 설득해내느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그 교훈은 2015년 위안부 합의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에는 사실상 무관심했다. 박 정부가 외교적 성과에만 치우친 나머지 피해자들의 마음을 사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이것이 위안부 문제가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돼 한·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尹-기시다 회담 의의

당분간 윤 대통령의 강제징용 해법이 몰고 올 혼란은 불가피하다. 이 과정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는 윤 정부의 성패와도 관련돼 있다.

한·일 관계 역사에서 보면 ‘김대중-오부치 공동정신’을 계승해 발전시킨 정부는 찾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일본과 역사전쟁을 시작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하면서 일본 내 혐한 기류에 불을 지폈다. 박근혜 정부 때엔 위안부 해법을 둘러싼 국내 정치적 반발로 혼란이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죽창가’와 ‘토착왜구’ 구호로 국민의 반일 감정을 부추겼다.

윤 정부의 대일 정책 구상도 야당이 이를 ‘대일 구걸외교’라고 공격하면서 이미 난관에 부닥쳤다. 야당이 강제징용 해법을 애국과 매국의 싸움으로 몰고 가면서 전략외교의 공간은 사라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16일 윤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 간의 정상회담 내용이 중요해졌다.

정상회담의 성과는 미지수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만남이 그동안 켜켜이 쌓인 양국 관계의 매듭을 푸는 시작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꽉 막힌 두 나라 관계를 복원하는 단초를 마련하며 향후 협력의 방향성을 공유하기 시작한다면 큰 의미가 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도 그 성과를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한국으로서는 기시다 총리가 일제강점기 조선에 대한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사과 표현을 어떻게 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기시다 총리는 과거 담화를 계승한다는 정도의 발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한·일 두 나라가 역내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자는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나온다면 그 자체도 의의를 지닌다.

◇미래를 위한 과제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양국 관계는 물론 한·미·일 3국 관계를 발전시키며 지속 가능한 협력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두 나라가 ‘미래준비위원회’ 같은 기구를 구상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가기로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은 경제와 민간의 교류를 통해 가까운 이웃으로 거듭나면서 구현됐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을 통해 미래를 열어가려는 전향적인 노력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 전환과 이를 계기로 복원된 한·일 셔틀외교가 ‘제2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만들어낼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 현대일본학회 회장

■ 용어 설명

‘결정의 본질’은 국제정치 분야의 석학이자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1971년에 초판이 나오고 1999년엔 필립 젤리코 버지니아대 교수와 함께 개정판을 냄.

‘제3자 변제’는 자기 이름으로 타인의 채무를 변제하는 것.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방안은 日 전범 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주는 것.

■ 세줄 요약

尹 대일 정책의 특징 :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로 일본을 인식하고, ‘피해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국격에 맞게 선도적으로 이슈를 해결하며, 일제 강점기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해법을 제시한다는 것.

합리적 행위자 모델 : 尹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합리적 행위자 모델’로 설명됨. 의사결정 주체는 국가·정부의 최고 지도자이며, 조직 구성원은 이 목표를 공유하면서 합리적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모델임.

미래를 위한 과제 : 尹의 강제징용 해법의 성패 여부는 정상회담의 성과, 일본의 적극 호응, 피해자 및 야당 설득 여부에 달림. 尹의 대일 정책 전환이 ‘제2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 이어질지에 관심이 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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