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한일 관계 전환점, 역지사지 필요하다

기사 정보
문화일보
입력 2023-03-16 11:49
기자 정보
기사 도구
프린트
댓글 3
폰트
공유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유하 세종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10년 이상 중단됐던 한·일 정상의 교류가 재개되게 됐다. 극심하게 나빠졌던 한·일 관계를 다시 복구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전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이 갖는 전환적 의미를 폄훼하고 비난한다.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사태의 핵심인 징용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올바른 판단도 가능하다.

우선, 법률적 차원의 본질을 봐야 한다. 2018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징용은 ‘일본 국가’가 주도한 것이었다. 당시 징용은 ‘국민 등록’(오늘의 주민등록)에 기반한 ‘출두명령’으로 시행됐다. 식민지 조선인은 국민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는 못하면서 천황에 충성해야 하는 ‘신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신민에게 국민 자격을 부여해 동원한 것이 징용의 핵심이다. 가족에 대한 보상을 징병과 같은 수준으로 하겠다고 약속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 현장에서 일했지만, 기업과 직접 고용관계에 있지 않았고, 그 고용은 국가를 거친 것이었다. 징용 문제는 일본(국가) 책임을 먼저 묻는 게 본질이다. 기업을 대상으로 배상을 명령한 2018년 판결은 이런 본말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역사 문제에 관심이 없고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는 뻔뻔한 일본’이라는 인식도 냉철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을 상대로 피해자들의 소송이 일어나면서 일본 사회가 이런 문제에 크게 반응한 사실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일본은 징용 문제를 테마로 국민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일본 인식은 그런 모든 것을 망각시키려 한 담론이 만든 인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은 냉담하다. 뻔뻔하거나 사죄 의식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위안부 문제 등을 거치면서 성의와 마음이 짓밟히고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누적된 결과다. 한·일 관계가 경색되기 전이던 10여 년 전만 해도 한·일은 징용 문제에서 서로 협조했다. 일본은 징용자 명단을 한국 정부에 제공했고, 유골 찾기 작업에 나섰으며, 봉환식에는 고위급 관료가 참석해 추도사를 읽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도 새로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선언은 한·일 관계가 좋을 때 나왔다. 4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인식은 오늘의 목소리에 담아야 한다. 갈등과 불화를 넘어선 목소리로서의 가치를 담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피해자’를 거론하지만, 제3자 대위변제안에 응하겠다는 당사자도 있다. 윤 정부의 해결 방안은 나쁘지 않지만, 일본인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진실한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한다. 역사 문제 해결에는 당사자의 위로와 치유뿐만 아니라, 국민적 이해가 동반돼야 한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힘겨운 일이다. 좌우로 분열된 역사 인식의 사법화와 정치화를 넘어선 국민적 공통 인식을 만들 수 있는 틀부터 윤 정부가 만들기 바란다. 편향된 주장과 구호와 선동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역사의 당사자와 교감 가능한, 공통의 ‘태도’는 만들 수 있다. 현정부가 어렵게 마련한 이번 전환점이 50년 반공과 30년 반일의 시대를 넘어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래’를 만들겠다는 양국 정부가 그 모색을 시작해 주기 바란다.
주요뉴스
기사 댓글

AD
AD
count
AD
AD

ADVERTISEMENT

서비스 준비중 입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