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내 인생의 봄날

  • 문화일보
  • 입력 2023-03-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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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숙 수필가, 괴산 농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새해 첫날부터 반쪽 육아 선택

잊은지 오래인 동요 불러 주니
샘물처럼 솟아나는 손주 사랑

지나친 사랑에 버릇 걱정해도
너희도 나중에 손주 키워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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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부터 지난가을 선물처럼 우리 곁에 찾아온 손녀딸 반쪽 육아를 선택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라더니 그 말의 참뜻을 온몸으로 느낀다. 하루하루가 황홀한 시간들이다.

지난가을, 몸도 맘도 쉬고 싶어 그동안 하던 일을 접고 홀가분하게 퇴근했다. 지나간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매일매일 하루에 한 사람씩 시간을 조율해가며 사람을 만났다. 누구를 만나고 헤어질 때 으레 인사처럼 밥 한번 먹자는 이야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미처 몰랐다. “그래요, 밥 한번 먹어야지요.” 이렇게 답하고는 몇 년 걸린 사람도 있고 몇 달 걸린 사람이 있다. 나는 무슨 배짱으로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는지, 언제든 시간 될 때 연락 달라는 인사가 고마워서 백수(白手) 1일 차부터 30일 차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을 만났다. 마주 앉아 식사를 한 사람도, 잠깐 차를 마신 사람도, 고팠던 소주를 한잔 나눈 사람도 있다. 살다가 이런 일도 있나 싶은 날들이었다.

며느리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출근하는데 백일 지난 손녀딸 육아를 자청할 만큼 건강해졌다. 아름다운 백수 시절이다. 그리하여 시작한 출퇴근 손녀딸 육아, 2인 1조로 할아버지와 번갈아 가며 동요를 불러주고 책을 읽어주고 딸랑이를 흔들며 아이와 놀아준다. 먹이고 씻기는 일은 할미가 맡고, 트림시켜주고 재우는 일은 할아버지가 맡았다. 아이를 재우는 데 포대기만 한 것도 없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는 어림도 없던 손녀딸을 등에 업은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포대기 사랑에 빠졌다. 많이 업어주면 다리가 벌어진다고 요즘 사람들은 안 쓰는 포대기를 선배 언니가 선물로 챙겨주었다. 이만한 게 없다고. 포대기의 매력은 아이와 나 사이에 흐르는 밀착도. 등을 통해 살살 전해오는 따뜻한 아이 온기와 숨결은 바로 사랑이다. 안 해본 사람은 잘 모른다. 아이는 잠이 오면 내 등에 얼굴을 비비며 잠이 든다.

예전에 친정어머니께서 조카들을 키울 때 부르던 그 자장가를 내가 똑같이 부르고 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꼬꼬닭아 울지마라 멍멍개야 짖지 마라…’ 자장가와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섬집아기 같은 동요 메들리 몇 곡이면 어김없이 스르르 잠이 든다. 초보 엄마 아빠는 매일 저녁 아이 재우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엄마의 비법을 가르쳐 달래서 아들 등에 아이를 업혀주니 우습기도 하고 대견해서 한참을 웃었다. 세상에 쉬운 게 있더냐? 엄마도 백일 지난 너를 떼어놓고 출근하면서 지하철에서 훌쩍대고 울고,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고 했더니 첫 출근을 한 며느리는 회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집으로 탈출할 뻔했단다.

아이를 씻기면서 교감하고 바로 재워야 꿀잠을 잘 수 있으니 목욕은 시켜주지 말라는 의견도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되도록 낮잠을 덜 재워야 아들 며느리가 밤에 충분히 쉴 것 같아 잊은 지 오래인 동요와 옛이야기 보따리를 마구 풀어낸다. 샘물처럼 솟아나는 손주 사랑이다.

젊을 때 내 아이 키울 때는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고 이렇게 아기가 이쁜 줄도 몰랐다. 이제 마음의 여유도 ‘만땅’(한가득)으로 채워졌으니 무엇하나 걸림돌이 없다. 할머니 지나친 사랑에 버르장머리 없어진다 해도 멈출 수가 없다. 너희도 나중에 손주 키워 봐라. 우유를 먹고 있는 아이는 할미 새끼손가락을 꼬옥 쥐고 할미는 아비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알아들었다는 듯이 젖병을 쑥 빼고 생긋 웃어준다. 이만한 선물이 또 있을까.

저녁, 제 어미 아비에게 맡기고 돌아오는 귀갓길은 또 얼마나 감사한가! 막걸리 두 병 사 들고 와서 오늘 육아 소감을 나누며 낮에 찍은 아이 영상을 보고 또 까르륵 넘어간다. 가끔씩 아들 집에 자고 가라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없던 약속을 만들어 빠져나온다. 저녁 시간만이라도, 종일 떨어져 있은 탓에 부족한 아이와 스킨십을 저희끼리 채워야 할 테니 말이다. 내게는 천금 같은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농사철이 돌아오니 우린 빠지고, 아이 봐주는 일을 사돈에게 맡기고 가끔 보고 싶어 못 참을 때만 주말에 손주에게로 달려간다….

요즘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도 작은 학교를 찾아 내려오는 귀한 청년 부부가 더러 있다. 오늘 만난 귀촌 부부는 첫아이 입학식을 하고 왔단다. 초등학교 신입생이 4명. 뉴스를 보니 시골 학교 신입생 4명은 많은 축에 속한다. 아예 신입생이 없는 곳도 적지 않으니. 우리 작은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적어도 축구 한 팀은 되는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단호하게 얘길 해서 이웃 면의 친구 집으로 전입시켜서 학교에 보냈다. 당시 전교생이 감물중학교는 여덟 명, 이웃 목도중학교는 스물여덟 명이었다. 축구 한 팀이 안 되는 날에는 여학생도 체육복을 입고 뛰었고, 또 모자라면 선배와 후배를 불러 매일매일 축구를 한 게임 하고 돌아왔다. 차편이 없는 날 데리러 갔다 오는 길에 아이는 잔뜩 볼을 발갛게 하고 한마디를 건넸다. “엄마 낮에 축구공을 놓쳤어요.” 학교 뒷산에 산벚꽃이 예뻐서 축구공을 놓쳤다는 얘기에 그 봄밤 남편과 축배를 들었다. 우리 귀농 참 잘했노라고.

산촌의 작은 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가는데 아예 아이를 안 낳는 신혼부부가 늘어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시골 학교는 어쩌나 참으로 걱정이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아들네가 바쁜 일이 있어 우리 부부가 다시 손녀를 보러 간다. 주말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알는지 모르겠다. 내게는 다시 오지 않을 금쪽같은 날들이다. 지금이 호시절, 꽃피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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