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샘 신경 자극하는 화학물질… 처음엔 ‘인도주의적’ 군중통제술로 사용[기술이 지나간 자리]

  • 문화일보
  • 입력 2023-03-27 08:59
  • 업데이트 2023-08-0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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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 최루탄은 현대에도 대규모 군중집회를 해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AP 뉴시스



■ 지식카페 - 기술이 지나간 자리 - (23) 최루탄

미세한 분말 형태로 호흡기 등에 심한 고통·밀폐된 공간선 질식 위험…1차 세계대전때 화학무기로 끔찍한 살상
한국엔 1960년 4월 혁명이후 시위 진압용으로 대거 도입… 1987년 이한열 사망뒤 ‘최루탄 추방 운동’ 번져


한국인에게 최루탄은 한동안 익숙한 물건이었다. 1990년대까지도 경찰은 각종 시위 현장에서 군중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최루탄을 이용했다. 미세한 분말 형태의 최루제는 연기처럼 퍼져나가 시위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물론,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이 퍼진 연기를 들이마시고 눈물과 콧물을 쏟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마침 바람이라도 불면 꽤 먼 거리를 날아가기도 했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0년대 초에는 꽤 거리가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지면 금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1999년에 경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무최루탄 원칙’을 선언한 이후 아예 사라졌다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예전만큼 쉽게 볼 수는 없는 사물이 되었다. 이는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특정 테크놀로지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결과 생겨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7년 6월 15일 서울 연세대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고 있다. 당시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정태원 촬영.



지금은 시위에 대한 경찰의 과잉 대응을 상징하지만, 최루탄은 군중을 통제하는 인도주의적 해결책으로 등장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최루탄 이전에는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봉으로 직접적인 물리적 타격을 가하고, 경찰 기마 부대를 이용하는가 하면, 심지어 실탄을 사용하는 극단적인 폭력에 의존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20세기를 거친 최루탄의 성쇠(盛衰)는 전 세계적으로 인권의식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화학적 테크놀로지들이 실제로 동원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게 단순하고 선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루탄은 실탄에 비해 ‘인도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군중 통제 방식일지 모르지만, 최루탄 역시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인명 살상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한국 현대사를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인간 신경계에 작용하는 새로운 화학물질은 대개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학, 특히 유기화학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축적되면서 비로소 그것이 실용적인 테크놀로지로 응용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학자로 프리츠 하버(Fritz Haber·1868∼1934)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공기의 약 80%를 차지하는 질소를 고정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화학비료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을 위해 각종 화학무기 개발에 앞장서 염소가스를 이용한 독가스 무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공기에서 빵과 죽음을 만든 과학자’라는 수식어는 이러한 하버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1차 대전은 ‘화학자들의 전쟁’이었다. 영화 ‘1917’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유럽의 전장에서 군인들은 기나긴 참호를 파고 여러 해에 걸친 지루한 싸움을 지속했다. 미국계 영국인 발명가 하이럼 맥심(Hiram Maxim·1840∼1916)이 개발한 기관총이 전쟁에 이용되면서 돌격전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1차 대전 중 기관총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화학무기였다. 기나긴 참호 진지는 화학무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하버가 개발한 염소가스 무기는 1914년 벨기에 이프르(Ypres) 연합군 방어진지에 투하되었는데, 순식간에 5000여 명을 질식시켜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후 양측에서 새로운 화학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1차 대전 중에 화학자들은 질식제뿐만 아니라 ‘겨자가스(mustard gas)’ 등 수포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로 인한 전사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1차 대전 이후 방독면은 군용 장비의 필수품이 되었다.

1차 대전을 통해 화학무기의 참혹성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1925년 제네바의정서를 통해 “질식, 유독가스(asphyxiating, poisonous or other gases)” 등 화학무기의 전시 사용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인간이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닫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세기 초 이후 인간 신경계에 작용하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등장했고, 그중 일부는 군용이 아니라 민간인 군중을 통제하는 테크놀로지로 폭넓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최루제 역시 그중 하나였다. 최루제는 눈물샘(lacrimal gland)의 신경을 자극해 눈물이 나오게 만드는 화학물질로, 고체 상태의 물질을 에어로졸 상태로 공기 중에 퍼뜨리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 주로 사용된 최루탄 KM25-3. 연합뉴스



통상 ‘최루가스(영어로는 tear gas)’라고도 부르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가스’는 아닌 셈이다. 이 물질은 눈물샘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통증수용기를 활성화시켜 인체와 접촉하면 피부와 호흡기에 심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원칙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고통이 사라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호흡기 질환이 있거나 밀폐된 공간에 오래 노출되면 질식할 위험성도 있다.

많은 한국인 남성은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최루제를 접해 보았을 것이다. 방독면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최루성 연막을 피워 두고 정화통 교체 훈련을 하게 된다. 이때 사용되는 최루제는 통상 ‘CS탄’이라고 알려져 있다. 훈련소 조교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CS캡슐을 프라이팬 위에서 천천히 태우면 흰색 연기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연기에 직접 노출되면 눈물, 콧물은 물론이고 노출된 부위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교장을 빠져나온 훈련병은 팔다리를 흔들어 최루제 성분을 최대한 털어내고 얼굴 부위를 물로 세척한다. 다행히도 2010년 이후 직접적인 노출은 최대한 피하는 방향으로 훈련 과정이 개선되어 이제는 연막 환경 속에서 빠른 속도로 정화통만 교체하게 된다고 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7년 6월 9일 서울 연세대 정문 앞에서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머리를 직격당한 이한열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다. 당시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정태원 촬영.



한국에 CS제와 CN제를 비롯한 최루탄이 도입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조선인 노동자들의 쟁의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루탄을 발사했다는 언론 보도로 보아 해방 이전에 이미 그 존재는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한국 경찰은 군중 시위를 관리하기 위해 최루탄을 일부 사용했지만, 대거 도입된 것은 1960년 4월 혁명 이후의 일이었다. 경찰이 학생 시위에 대응하면서 실탄을 사용한 것이 경찰의 “폭동진압법”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으로 이어졌다. 특히 미국 자문단은 살상력이 없는 “인도주의적” 군중통제술로 최루탄 이용을 적극적으로 권고했다. 이러한 권고에 따라 미국은 한국 경찰에 최루탄을 비롯한 각종 시위 진압 장비를 지원했다. 이후 각종 시위 관리에서 최루탄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삼양화학공업은 1980년대 들어 매년 200만 발 이상의 SY-44탄을 정부에 납품할 정도였다. SY-44탄은 최루탄 발사기를 통해 격발하면 약 80m 날아가 떨어져 연막을 분사하는 총류탄(銃榴彈)식으로 45도 이상 위로 기울여 발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1987년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시위 현장에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경찰이 SY-44 최루탄을 기울이지 않고 직격 발사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한열의 죽음은 ‘인도주의적’ 군중통제술로 알려진 최루탄의 잠재적 위험성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이후 재야 세력은 “최루탄 추방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경찰 역시 이에 호응하면서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이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일어난 대규모 군중집회에서 경찰은 최루탄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해산시키기보다는 경찰 버스나 컨테이너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시위대가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수동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최루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은 막대한 최루탄 생산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 중 상당 부분은 해외로 수출되어 오만, 스리랑카, 터키 등지에서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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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연막탄 방식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최루액 방식으로는 여전히 일부 집회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전장의 참호로부터 서울 시내 한복판까지 20세기를 관통하며 등장하는 최루탄의 역사는 일단 출현한 어떤 테크놀로지는 당장 눈앞에서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형태를 바꿔가며 우리와 함께 끈질기게 존재하기도 함을 잘 보여준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용어설명 - CS제

CS제는 2-클로로벤즈알말로노나이트릴(C10H5ClN2)이라는 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CS’는 이 화학물질을 처음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한 미국의 화학자 벤 코슨(Ben Corson)과 로저 스토턴(Roger Stoughton)의 이름 앞글자를 딴 것이다. 이후 CS제는 1950년대 영국에서 군사용 최루제로 개발돼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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