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텔란展 14만·조선백자展 6만… MZ, 미술관 ‘찢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5-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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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탈리아 출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WE’)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리움 제공



■ 문화수요 폭발, 미술관 매진사례

리움 ‘WE’ 인근 상권까지 활기… 부산 무라카미展도 14만
국립현대 ‘이중섭展’ 28만 ‘최우람 개인전’은 93만 진기록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후 대중들 미술 관심·수준 높아져
연예인 SNS 감상평 한몫… 공연 비해 좋은 가성비도 영향


“리움미술관은 늘 고급스러우면서도 고즈넉한 느낌을 줬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무척 활기 있는 곳이 됐더군요.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현대미술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미술 마니아인 박모(54) 씨는 지난달 30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을 다녀와서 이렇게 전했다. 최근 이 미술관 전시를 관람한 이들은 비슷한 소감을 SNS에 올리고 있다.

1일 리움 측에 따르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2개의 전시를 보러 오는 관람객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 관람객이 각각 14만 명, 6만 명을 훌쩍 넘겼다. 리움 관계자는 “관람 2주 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예매가 가능한데, 항시 매진”이라고 밝혔다.

리움의 전시뿐만 아니라 다른 미술관에도 관객들이 몰리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개막 후 6일 만에 관객 2만 명을 넘은 에드워드 호퍼 개인전을 주관한 서울시립미술관은 “유료 관람임에도 예매 열기가 뜨겁다”고 전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4월 16일에 끝난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는 70여 일 동안 관객 14만6000여 명을 동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이중섭 전’ 28만여 명, 최우람 개인전 93만여 명의 열기가 다른 전시에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수 겸 배우 차은우가 리움미술관의 카텔란 전에서 작품을 둘러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SNS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미술관에 관객이 몰리면서 그 인근 상권도 영향을 받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인기 전시가 있을 때는 근처 카페와 음식점이 북적거려 대기 줄을 서야 한다”고 했다. 대형 미술관 인근은 모두 비슷한데, 특히 리움미술관의 경우엔 이태원, 한남동 전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핼러윈 참사로 위축됐던 상가 분위기가 되살아나는 데 일조하고 있어서다. 미술관 인근의 한 음식점 직원은 “전시 관객이 많아지면서 저희 가게를 찾는 분들도 확실히 늘었다”고 했다. 한 카페 매니저는 “저희 가게는 리움에서 꽤 떨어져 있는데도 전시 관객들이 들러주고 있다”며 “지역에 미치는 미술관 영향력이 큰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경기 침체로 미술 시장 활황 분위기가 주춤한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 삼청동을 비롯한 화랑가도 관람객들의 방문이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 관람 위주의 미술관과 달리 미술품 매매가 이뤄지는 화랑가는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한 화랑 관계자는 “수집가들의 매입 열기는 활황 때보다 다소 떨어졌으나, 좋은 작품을 감상하려는 마니아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리움미술관 부관장인 김성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후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동안 우리 사회에 쌓였던 문화 욕구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폭발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젊은층이나 가족 단위로 미술 전시를 보러 가는 문화 트렌드가 우리 한국에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봤다. 밖에 나가서 음식을 즐기고 영화·공연을 보는 것 이외에 미술관 나들이를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미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레저를 즐기는 영역 폭이 선진국형으로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물론 전시 품질이 이전보다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하다. 예컨대, 리움의 카텔란 전은 현대미술의 첨단적 재미를 충족한다는 점에서, 백자 전은 전통미감의 절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한쪽 전시를 보러 왔던 관객이 다른 쪽의 작품들을 보면서 문화 경험의 폭을 넓히도록 유도한 기획도 주효했다.

미술관의 전시 관람료가 공연 등에 비해 싸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다는 점도 관객 유인의 한 까닭이다. 리움의 이번 전시들처럼 ‘시민과의 문화 동행’ 차원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경우도 꽤 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열광은 미술관 붐을 이끄는 큰 요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3∼4월 홈페이지에 신규 가입한 이들 중 63%가 MZ세대였다”고 밝혔다. 설치작가 최우람 전시에 93만 명이나 몰린 것은 젊은층의 열광을 반영한 것이라고 미술관 측은 분석했다. 최우람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계 생명체’를 제작해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을 하도록 이끈다. 젊은 관객들은 디스토피아 세상을 풍자하는 작가의 메시지에 공감하면서 동시에 작품 자체의 생동감을 보고 느끼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현대미술은 난해하다는 기존 인식에서 탈피해 적극적으로 감상하며 누리는 신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 학원 등을 통해 미술 학습을 한 덕분에 다양한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보며 자기식으로 소화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대중이 SNS에 사진을 올리며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된 것도 관람 열기를 더 뜨겁게 하고 있다. 미술관에 다녀온 후 작품 사진과 함께 감상평을 올려 지인들과 소통하며 추종 관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물이 전시 소감을 SNS에 올리는 것도 미술관 붐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카텔란 전의 경우, BTS의 RM뿐만 아니라 배우 김혜수, 차은우 등이 다녀간 것이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더 화제가 됐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은 각기 신문 칼럼과 SNS에 깊이 있는 평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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