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름 밀어내는 곤충껍질 본떠… 혈전예방 인공혈관 만들었다[Science]

  • 문화일보
  • 입력 2023-05-03 08:57
  • 업데이트 2023-05-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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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송재우 기자



■ Science - 최연호 고려대 교수·조양현 삼성병원 교수 등 공동 개발

썩은 나무 밑 서식하는 ‘톡토기’
표면의 ‘미세 재진입구조’ 활용
관형태로 제작 항응고 도관 개발

화학처리 없이 항혈전 기능부여
약물치료 출혈 부작용 등 줄여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인공 조형물보다 자연에 존재하는 돌과 나무, 곤충과 동물 같은 자연물의 구조와 설계가 훨씬 정교하고 더 합리적으로 돼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이들은 과학자이다.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최초로 찾아낸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과 그를 계승해 마이크로 세계의 관찰기를 남긴 영국의 로버트 훅은 닭 털의 미세한 섬모나 코르크나무의 구멍 숭숭 뚫린 표면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이후 과학자들은 단순히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물의 외형과 기능을 적극적으로 베끼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공학의 한 갈래를 ‘자연 모사(模寫)’ 또는 ‘생체 모방 기술(Nature inspired technology)’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아무리 미끄러운 벽에도 찰싹 달라붙는 게코도마뱀의 발바닥 돌기 구조를 모사한 수술 봉합 테이프, 거미줄의 엄청난 강도와 탄력성을 모방한 인조 섬유 등이 있다.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최연호 교수와 안암병원 흉부외과 정재승 교수, 삼성서울병원 조양현 교수 공동 연구팀은 곤충의 껍질 표면 구조를 모방해서 혈액을 밀어낼 수 있는 성질을 지닌 항혈전 인공혈관 개발에 성공했다. 특별한 화학 처리 없이 의료기기 표면에 항혈전 기능을 부여할 수 있어 향후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 적용이 기대된다. 이 논문은 마이크로 및 나노 소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저널 ‘스몰(Small)’에 최근 게재됐다. 본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나노·소재 기술개발 사업 중 나노 커넥트 사업 지원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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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이 주목한 곤충은 낙엽이나 썩은 나무 밑, 물 위, 모래, 늪과 같은 환경에서 서식하는 톡토기(학명 Collembola, 영문명 Springtail)이다. 톡토기는 껍질 표면의 독특한 미세 재진입구조(double re-entrant structure)를 활용해 호흡을 방해하는 물과 기름 성분을 피부 밖으로 밀어내고 피부호흡을 하며 살아가는 흥미로운 곤충이다. 따라서 해당 표면 구조를 모방해 인공혈관 형태로 제작·사용하면, 물과 기름 성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혈액을 관 내부로 자연스럽게 밀어냄으로써 혈전(핏덩어리)을 예방할 수 있다. 혈액 응고 지연제 같은 약물을 써서 혈전을 방지하는 기존 치료와 비교하면 약물 치료 이후 쉽게 출혈이 되거나 혈소판이 줄어드는 증세 발생 등의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또 혈관을 화학물질로 코팅하는 기존의 다른 방법과 비교해도 체내 안전성 면에서 아주 우수한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같은 미세 재진입구조를 관 내부에 안정적으로 제작하는 작업이 매우 높은 난도를 요구하는 섬세한 공정이라 시도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반도체 제조 같은 미세 구조 형성에 활용되는 수십 나노미터 크기 입자를 이용한 구조 제작법(Nano sphere lithography)과 과거 마이크로 크기의 구조물 제작에 널리 쓰이던 노광법(露光法, 포토리소그래피·photolithography)을 융합해 유연한 고분자 재료로 톡토기 피부표면 구조를 모방하고, 이를 관 형태로 제작해 내부 표면의 개질에 성공했다. 연구팀이 이중 재진입구조 형태로 톡토기의 피부 구조를 모방한 결과, 해당 혈관의 내부 표면은 휘어진 상태에서도 물과 기름을 쉽게 튕겨내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또 유연한 발수(撥水) 유성(油性) 표면에 말아 올리는 공정(roll-up method)을 추가해 관 형태로 제작한 데 이어, 이를 기반으로 같은 구조의 항응고 혈액 도관을 개발했다. 새로 제작한 도관은 내부 곡률반경이 작은데도 미세 구조가 변형되면서 발수 유성 성질이 감소하는 단점이 적었다. 또 기름과 물의 복합물인 혈액에서 테스트해도 잔여 물질이 표면에 남지 않고 빠르게 흘러내리는 발수 유성 성질을 그대로 보였다.

연구팀은 삼성서울병원과의 협력을 통해 토끼를 대상으로 한 동물 혈액 순환 실험을 실시한 결과, 도관의 표면에 부착된 혈전은 기존보다 99% 이상, 혈류 속도 감소 및 혈전 형성에 관여하는 혈소판 감소 또한 각각 80%, 60% 이상 놀라운 수준으로 개선됨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새로 개발한 도관 내부 표면의 항응고·방오(防汚) 특성을 이용해 의료용 패치, 혈관 운송용 튜브, 피막형 스텐트 막 등 다양한 의료기기와 의료 소재의 표면 개질에 적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기존의 코팅 기법과 달리 영구적으로 자가 세척과 방오 특성이 유지된다는 장점을 활용해 의료 분야를 넘어 태양광 패널, 선박 표면 청결 유지 등 다른 산업 영역으로도 널리 확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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