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의 시론]‘비정상의 정상화’와 대국민 소통법

기사 정보
문화일보
입력 2023-05-19 11:42
기자 정보
기사 도구
프린트
댓글 0
폰트
공유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승훈 논설위원

전기료 인상은 국민소통 문제
카터, 훈계조 TV연설로 역풍
비서진 탓했다 국정신뢰 타격

尹 3대 개혁 성패 국민 설득 관건
‘네탓’ 논법 재고해야 미래 지향
포용 화법으로 국민 이해 구해야


에너지난 속에 결정하는 전기요금 인상은 단순히 민생 경제나 산업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국정 운영 방식, 대국민 소통과 통치의 문제를 보여준다. 미국에선 지난해 6월 국제유가가 치솟아 휘발유 가격이 사상 최초로 갤런당 5달러를 돌파했다. 그러자 조 바이든 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비교하는 시각들이 나왔다. 경제 상황이 재선에 실패한 카터 재임 시절과 유사했고, 바이든이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요지였다. 카터는 극심한 고물가에 시달렸다. 2차 오일 쇼크가 발생해 소비자물가지수가 연 13%를 오르내렸다. 실업률도 높은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카터는 1979년 7월 에너지 위기와 관련해 TV 연설을 했다. 고통 분담을 요청하는 대국민 설득이었다. “불필요한 여행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세요. 난방 전원을 절약 상태로 돌려놓으세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노변정담을 벤치마킹한 것인데, 결과는 딴판이었다. 미국인들은 카터의 제안을 자유경제 행위와 재산권 침해 문제로 받아들였다. “많은 사람이 방종과 소비를 숭배하는 경향이 있고, 미국이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다”고 한 게 결정적이었다. 국민 의식을 탓하는 질책으로 들었다. 설득 실패였다. 카터는 그 책임을 백악관 비서진에게 돌렸다. 전원 사표를 내라고 하는 바람에 더 큰 악재가 됐다. 후대 정치학자들은 당시 카터에 대해 “국민의 습관을 고치려 하지 말고, 에너지 과소비에 대한 의식을 바꿀 수 있는 학습 과정, 즉 적응할 시간을 줬어야 했다”고 분석한다. 대국민 소통 방식이 어긋나면 통치가 흔들린다. 카터는 1980년 선거에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패했다.

윤석열 정부의 최근 전기요금 인상 결정도 국민 소통과 통치의 문제다. 지난 16일부터 올 2분기 가정용 전기 요금을 ㎾h당 8원, 5.3% 올렸다. 진즉 결정해야 했는데 경제 사정을 고려해 “문재인 정부와 뭐가 다르냐”는 소리까지 들으며 미루다 한국전력 부실이 커지자 소폭 인상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요금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했으나 벌써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난해부터 네 차례 누적된 전기요금 인상분만 해도 올여름 냉방비 급등이 걱정이어서다. 반면, 여전히 원가보다 싼 전기를 쓰고 있으니 차제에 연료비 연동제를 해서 가격 통제를 끝내고, 에너지 과소비 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올 3, 4분기 전기요금 결정도 진통을 예고하는 셈이다. 과연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전기요금을 또 올릴 수 있을까. ‘정치 연동제’ 같았던 비정상의 전기요금 결정을 정상화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취임 2년 차로 접어들면서 재차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강조했다. 이 역시 국민 설득이 성패를 좌우하는 과제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건 정부로선 향후 전기요금 결정 방식이 그 시험대일 수 있다. 여태껏 보여준 소통 방식부터 재점검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전기료 인상과 관련해 탈원전을 거론하며 “정치 이념에 매몰된 국가 정책이 국민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지난 정부를 무조건 비판해서는 안 되지만, 잘못된 정책에 대해 명확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어떻게 변화시킬지 방향성이 나온다”고도 했다. 그 취지 역시 이해한다.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1년을 “무너진 시스템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집값 폭등, 전세 사기, 코로나19 방역, 주가 조작, 외교·안보에 이르기까지 1년 내내 전임 정부 실정을 열거하면서, 국정의 지향점이 내일보다 과거로 거스르는 경향은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실책투성이’와 견줘 비교우위를 주장하는 게 여전히 설득력이 있을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은 그보다 더 악화한 환경 속에서 더 나은 국정 성과를 보여주는 절대우위를 바라지 않겠는가. 네 탓을 하면 ‘그들과 우리’로 나누게 된다. 같은 생각이 아니면 적폐로 몰아가는 비정상 ‘편 가르기’를 우리가 얼마나 성토했는가. 포용의 정치가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손해를 보는 것도 있다. 그래도 껴안는 국민소통법이 통합을 지향하는 국정 정상화의 토대일 것이다. 이제 ‘네 탓’ 논법은 그만할 때가 됐다.
주요뉴스
기사 댓글

AD
AD
count
AD
AD

ADVERTISEMENT

서비스 준비중 입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