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양조에 밀려났던 전통 누룩… 막걸리 등 인기 끌며 다시 기지개[기술이 지나간 자리]

  • 문화일보
  • 입력 2023-05-22 08:59
  • 업데이트 2023-08-0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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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큰 사랑을 받아온 전통 누룩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식 양조 기술이 도입되며 휘청였고 이후 여러 부침을 거듭하다 최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다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조선시대땐 흉년 들면 금주령 내려 누룩 거래까지 금지… 1963년 이후에도 쌀 부족하자 백미로 술 못빚게 초강수
식생활 변하면서 쌀 과잉시대 열리며 이젠 되레 쌀 촉진운동… 가양주 등 대량 생산 이어지며 누룩공장도 성업

■ 지식카페 - 기술이 지나간 자리 - (25) 사라진 누룩 되살리기


발효는 인간과 미생물이 힘을 합쳐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미생물은 인간이 공급하는 유기물을 먹고 번식하며, 그 과정에서 유기산, 가스, 알코올 등 인간에게 유용한 부산물을 내놓는다. 발효와 부패는 생물학적으로는 똑같은 현상이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부산물이 쓸모 있는 것이라면 발효라 하고 부산물이 쓸모없거나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라면 부패라고 구별할 따름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발효 기술을 개발해 왔다. 곡식이나 당분이 많은 과일을 발효해 술을 만들었으며, 단백질이 많은 콩이나 우유를 발효해 장류나 요거트, 치즈를 만들었고, 채소를 발효해 김치나 장아찌를 만들었다. 빵 반죽을 발효하면 이산화탄소 기포가 일어나 속에 구멍이 많고 부드러운 빵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발효식품은 오래 보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맛을 얻게 해주고, 분자가 큰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을 분해해 소화 흡수가 잘되는 형태로 바꿔 주는 등 여러 가지 이점이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만 발효를 잘 조절하려면 미생물을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으므로,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효를 이끌려면 특정한 미생물이 번식하기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거나 특정한 미생물을 골라 활용해야 한다. 김치를 담글 때 온도나 염도를 조절하는 것이 앞의 예라면, 누룩을 따로 띄워서 양조에 활용하는 것은 뒤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누룩이란 곡물에 누룩곰팡이를 띄워서 만든 발효제다. 밀 등 곡물을 가루 내어 반죽한 뒤 뭉쳐서 모양을 잡고 자생하는 곰팡이가 앉도록 한다. 곰팡이가 증식하면 잘 말려 보관한다. 쌀을 쪄 술밥을 만들고 누룩을 잘게 부수어 골고루 섞어주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만난 곰팡이는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여러 종류의 곰팡이들은 대사 부산물로 당화효소를 생산하는데, 당화효소는 쌀의 전분을 쪼개 포도당 등 간단한 당류로 만든다. 이렇게 생산된 단당류를 다시 곰팡이가 영양분으로 사용하고, 당분을 이산화탄소와 에탄올로 분해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인간은 균에게 먹이를 주는 대신 에탄올을 얻는 셈이다.

누룩은 곡주 문화권에서 발달했다. 포도와 같은 과일에는 껍질 등에 자생하는 균류가 있어서, 과실주 문화권에서는 당도 높은 과일즙을 짜놓으면 발효가 쉽게 일어난다. 이에 비해 곡주 문화권에서는 당화(다당류의 분해)와 알코올 발효라는 두 단계를 거쳐야 하므로 효모를 첨가해줘야 한다. 곡주 중에서도 맥주는 보리를 싹틔우면 당화효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알코올 발효에만 효모가 필요하지만, 막걸리나 전통(증류식)소주 또는 고량주 등은 당화와 알코올 발효 모두 효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밀려난 누룩, 절미운동으로 치명타

술을 담글 때 누룩이 필수품이었으므로, 누룩을 통제하는 것은 술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절제와 검약을 강조했던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흉년에 금주령을 내리는 일이 잦았다. 백성이 밥해 먹을 쌀도 모자란데 부귀한 이들이 쌀을 탕진해 가며 소주를 내리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금주령에는 술을 팔거나 집에서 담그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뿐 아니라 누룩의 거래를 금지하는 조항도 있었다. 누룩을 주로 밀가루로 만들었기 때문에 집에 밀을 보관하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버리도록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금주령을 내렸던 기간을 빼면 도성 안 시장마다 누룩 가게가 성업했다고 한다.

일상의 재화로 사랑받던 전통 누룩은 일제강점기 일본식 양조 기술이 도입되면서 휘청이게 됐다. 쌀을 원료로 당화와 알코올 발효를 거쳐 술을 만드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지만, 일본은 양조에 근대과학을 도입해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는 과정에서 당화와 알코올 발효를 분리하게 됐다. ‘고지’라고 부르는 알갱이 형태의 일본식 누룩을 이용해 당화를 하고, 별도의 효모를 첨가해 알코올 발효를 진행하는 스타일이 확립됐다. 고지와 누룩은 모두 한자로는 ‘국(麴)’ 자를 쓰지만,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한국의 누룩은 밀가루를 익혀 덩어리로 빚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균을 자연 접종하는 병국(餠麴)인 데 비해 근대 일본의 고지는 다른 균이 섞이지 않도록 술밥이나 밀가루에 실험실에서 배양한 균(주로 ‘백국균’)을 접종해 만드는 입국(粒麴) 또는 산국(흩임누룩, 散麴)이다. 형태도 다르지만 균주를 인간이 선택하고 조절한 것인가 아닌가의 차이가 크다. 근대 과학기술을 발 빠르게 받아들인 일본은 안정적인 품질로 술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입국 제조 기술을 개발했고, 이는 빠르게 일본 전역에 확산됐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정부 주도 절미운동의 일환으로 막걸리 제조에 백미 사용이 금지돼 사라진 쌀막걸리가 1977년 해금 조치로 다시 등장하자 쌀막걸리를 맛보기 위해 술집 앞에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이 1977년 12월 9일 자 한국일보 지면에 실렸다.



이렇게 한발 앞서 산업화 단계에 진입한 일본의 양조업은 개항 이후 한반도에 속속 발을 디뎠다. 청주나 간장 등 일상 소비재 시장을 일본 기업이 잠식해 들어갔고, 한국인 양조장들도 일본식 기술을 받아들여 사업 확장을 꾀했다. 늘 마시고 먹는 술이나 간장이었지만 제조법이 일본식 기술로 바뀌면서 풍미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복잡한 맛을 내는 한국식 누룩의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균일한 맛을 내는 일본식 고지의 맛을 선호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누룩과 달리 입국은 술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니 발효 후 걸러낼 필요가 없어 편리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들로 양조업자들도 규격화된 제품으로 고지를 사서 쓰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누룩이 금세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막걸리는 청주나 소주와는 달리 일본식 양조 기술의 영향을 적게 받아 1960년대까지도 누룩을 많이 사용했다. 1949년의 주세법에는 탁주의 원료가 “곡물과 누룩”으로 명시돼, 오히려 입국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사용이 편리한 입국을 선호하는 양조업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1963년 누룩 사용과 관련한 규정을 폐지했으며, 그 뒤로 막걸리 양조에도 입국 사용이 성행하게 됐다.

한편 1963년은 백미를 양조에 사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한 첫해이기도 하다. 만성적인 쌀 부족 대책으로 정부는 현대판 금주령에 버금가는 초강수를 뒀다. 쌀을 쓸 수 없게 되자 밀가루와 고구마 등이 막걸리 원료로 사용됐고, 이렇게 전통 양조법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지는 것 또한 입국 사용이 확산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쌀 양조 금지는 상업적 양조업자뿐 아니라 집에서 담그는 술, 즉 ‘가양주’ 문화에도 치명타를 날렸다. 역사 있는 가문에서는 고유의 가양주 레시피를 간직하고 있었고, 집에서 직접 만든 누룩을 사용해 고유의 풍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쌀술이 금지되면서 가양주 문화도 맥이 끊겼고, 누룩을 만드는 집도 한동안 나오지 못하게 됐다.

◇전통주 되살리기와 누룩 되살리기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던 누룩은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혼분식을 강제하고 쌀술을 금지하던 시절이 무색하게도, 한국인의 식생활 패턴이 변하면서 쌀 생산 과잉의 시대가 다가왔고 정부는 쌀 소비를 촉진하는 방안의 하나로 전통주 부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맥이 끊긴 가양주나 지역 전통주를 되살리려는 노력들이 이어졌고 몇 가지 술은 전국에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한국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서도 전통주를 내어 대접하는 것이 놀랍지 않은 일이 됐다.

전통주를 연구하는 이들은 자연히 누룩에도 주목하게 됐다. 옛 문헌에서 레시피를 찾아내 따라 한다고 해도 누룩이 아닌 입국을 쓴다면 진정한 전통주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나왔고, 이에 대해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대사회에서 개량된 입국을 쓰는 것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정해진 답이 있는 문제는 아닐 터이므로 양조 기술자와 연구자 등이 꾸준히 토론하며 실천 속에서 길을 찾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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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동안 잊혔던 누룩이 최근 다시 관심을 끌며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량의 누룩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누룩 공장도 최근 여럿 생기고 있으며, 누룩 안에 공존하는 여러 종의 균의 상호작용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한국식품연구원 등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사실 우리가 누룩을 잊고 살았던 동안에도, 우리가 누룩을 띄우건 띄우지 않건 누룩곰팡이들은 우리 곁에 늘 있었다. 누룩을 ‘되살린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한동안 외면했던 자생하는 곰팡이들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호 전북대 교수

■ 용어설명 - 효모, 누룩, 발효종, 이스트

효모는 균계에 속하는 약 1500종의 미생물을 아우르는 통칭이다. 곰팡이 가운데 인간이 원하는 물질을 부산물로 내놓는 것들을 편의상 묶어서 효모라고 부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용도에 따라 빵효모, 맥주효모, 술효모(누룩곰팡이) 등 다양한 효모가 이용되고 있다. 누룩은 양조에 이용하기 편하도록 곡물에 효모를 번식시켜 말려 뒀다가 쓰는 것이다. 잘 부풀린 빵 반죽을 조금 떼어 뒀다가 새로 만드는 반죽에 섞어서 새 반죽을 부풀리는데, 이것은 발효종이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이스트(yeast)는 원래 효모를 뜻하는 영어 단어지만, 한국에서 이스트라고 하면 보통 제빵용으로 개량한 건조 이스트 제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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