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알린 봉수대… 500년 전에도 오보 있었을까[도시풍경]

  • 문화일보
  • 입력 2023-06-0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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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풍경

“왜적이 나타났다. 봉홧불을 올려라. 봉홧불을 올려라.” 조선 세종 20년(1438)의 어느 해 질 무렵,
부산 다대포로 침략한 왜구를 발견한 수군은 즉시 봉수군에게 봉화를 올리도록 한다.
이 신호는 5개 봉수 기간 선로 중 제2로(路)인 동래 다대포→경상도→충청도→경기도→성남 천림산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한양 목멱산(지금의 남산)까지 왔고, 세종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12시간 만에 그 사실을 보고받는다. 만약 걸어서 소식을 전달했다면
스무 날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서울 안산 봉수대에서 도심 전경을 보며
500여 년 전 국가 위기 시 통신망 작동에 대해 상상해 봤다.
봉수대는 원래 군사시설이며,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밤에는 횃불(烽)을,
낮에는 연기(燧)를 피워 외적의 침입이나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전했다.
특히 세종 시대에 5개 노선으로 정비하고 체계화해 봉수는 약 643개에 달했다.
고종 32년(1895) 6월 1일 봉수 제도 폐지로 사라지기 시작해 이제는 상당수가 훼손되어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현재 서울에는 남산 봉수대, 아차산 봉수대, 천림산 봉수대,
무악산(안산) 봉수대, 개화산 봉수대까지 5개가 남아 있다. 며칠 전 경계경보 문자 하나로
나라가 대혼란을 겪은 일을 떠올리며 수백 년 전, 수많은 백성은 산등성이 위의 봉수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개수를 세며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지 않았을까.

■ 촬영노트

봉수의 신호 체계는 평상시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접전을 벌이면 5개의 신호를 올리도록 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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