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여자야구와 레전드 코치들

  • 문화일보
  • 입력 2023-06-0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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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체육부 차장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프로야구 레전드 선수들이 한국 여자야구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얘기를 하면 모르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올해 여자야구대표팀 코칭 스태프는 사상 최초로 야구 스타 출신 코치들로 구성됐다. 실제 면면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현역 시절 명투수였던 양상문 대표팀 감독은 롯데와 LG에서 1군 사령탑을 지냈고, LG에선 단장을 역임했던 야구계 거물급 인사이다. 프로야구 레전드로 꼽히는 2루수인 정근우가 타격·수비 코치를, LG에서 주력 불펜 투수로 활약한 이동현과 2009년 KIA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인 정용운이 투수 코치, 롯데와 SSG 포수로 그라운드를 누빈 허일상이 배터리 코치를 이뤘다.

사실 이들은 모두 본업이 따로 있는 ‘투잡러’다. 양 감독과 이동현은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전국 각지를 누비고 있고, 정근우는 야구 예능 프로그램인 ‘최강 야구’의 핵심 멤버로 활약 중이다. 정용운은 지난 2월부터 한국마사고 초대 야구코치를 맡고 있으며, 허일상은 개인 레슨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지난 2월부터 주말마다 여자대표팀 훈련에 합류해 선수들을 지도했다. 대표팀에서 받는 수당은 고작 월 40만 원 수준. 도대체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코치들이 왜 매주 화성과 안성 등 여자대표팀 훈련장을 전전하며 고생을 사서 할까.

한국 여자야구는 불모지에 가깝다. 여자야구는 국내에 변변한 실업팀 하나 없다. 전국 순수 아마추어 클럽팀은 40여 개가 전부다. 이번 대표팀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가정주부와 직장인, 교사, 재일교포,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구성됐다. 여건도 열악하다. 특히, 여자야구 선수가 프로야구 선수 출신에게 수업을 받는 것은 무척 어렵다. 행여 개인 레슨을 받더라도 비용은 최소 30만 원 이상이다. 이런 딱한 사정을 양 감독으로부터 전해 들은 코치들은 한걸음에 달려와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대표팀 선수들과 약 3개월 동안 호흡하며 함께 구르고 달렸다. 때론 경기장 정비에도 나섰고, 훈련을 마친 뒤에는 야구인 선배로 다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코치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최근 달콤한 열매로 보상받았다. 야구대표팀은 최근 홍콩에서 막을 내린 제3회 아시아야구연맹(BFA) 여자야구 아시안컵 B조 조별리그에서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대표팀은 조별리그 상위 두 팀에 주어지는 슈퍼라운드 진출에 성공했고, 최종 3위에 올랐다. 그리고 2024 여자야구월드컵 출전권까지 챙겼다. 대회 기간 내내 대표팀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뛰어난 기량은 현지에서 찬사를 받았다.

남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공유하는 재능 기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상에 혼자 피는 꽃은 없다. 이번 코치들의 재능 기부는 야구계에 큰 울림을 줬다. 그러나 반짝 관심으로 끝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제2, 제3의 정근우, 이동현, 정용운이 나올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간 많은 스타가 재능 기부에 나섰지만, 대부분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질 못했다. 프로야구 출신 레전드 코치들과 대표팀이 오는 8월 여자야구월드컵에서 어떤 드라마를 쓸지 궁금하다.
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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