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신뢰와 법안 제출권[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3-09-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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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 사회부 차장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명된 이후 던진 화두는 신뢰와 권위다. 이 후보자는 지난 8월 23일 지명 후 첫 일성으로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하겠다”고 각오를 밝혔고, 6일 뒤 인사청문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할 때는 “사법부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게 가장 급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후보자는 대전고법원장 시절인 지난해 12월 기고 글에서도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등 사법의 신뢰와 재판의 권위가 무너져 내려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통탄했다. 1990년 판사가 된 이후 법원장 시절을 제외하고는 재판 업무만 맡았던 그에게 판사의 성향을 따지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판결을 해석하는 풍조는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법의 정치화’ 과잉 시대에 이 후보자는 해결책으로 사법부의 통합과 공통된 비전 설정을 제시했다. 판사들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서는 안 되고, 본연의 업무인 재판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법부 내의 ‘웰빙’ 문화를 타파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는 법원의 고질(痼疾)인 재판 지연에 대해 “1주일에 판결 6건을 쓰지 않아 재판 지체가 생긴다면 최대한 목표에 가깝게 판결을 하고 국회에 판사를 늘려 달라고 하는 게 맞다”고 주변에 지론을 말했다고 한다.

사법부 신뢰와 권위 회복이 최우선 과제라는 이 후보자의 인식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보고, 사법부의 통합부터 이뤄 가겠다는 접근법도 옳아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일으키려면 적절한 수단이 뒷받침돼야 한다. 입법부의 다수당은 숫자의 힘, 때로는 물리력을 동원해서까지 법을 바꾼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임면권을 수시로 행사하면서 통치력을 확보한다.

그에 비하면 사법부는 힘이 없어도 너무 없다. 중요한 정책 과제를 입법하고 싶으면 국회의원이나 법무부의 손을 빌려야 하고, 판사 수를 늘리려면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와야 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한 축이지만, 예산은 행정부의 한 부처인 법무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예산 항목은 80%를 차지하는 사법행정 운영 지원 부분을 빼면 재판활동 지원, 법원시설 확충 및 유지보수, 사법 정보화 운영 등에 불과하다. 사법행정 운영 지원비는 대부분 인건비다. 로펌에 비해서 턱없이 적다는 지적을 받는 판사와 직원의 월급을 주면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는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법안을 추진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수사를 받게 되고, 재판 지연에 대한 대응책인 판사 확대 등이 쉽지 않자 법원 내부에서는 법안 제출권 및 예산 편성권을 가져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법원행정처장 출신인 안철상 대법관은 지난 7월 한 강연에서 “예산안 편성권과 법률안 제출권이 없는 탓에 극단적으로는 사법 정책의 실질적인 결정권이나 그 효과가 행정부나 입법부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사법부 신뢰와 권위는 신념과 사명감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다. 사법부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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