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했던 독일의 추락[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3-09-12 11:35
  • 업데이트 2023-09-1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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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 국제부 기자

“독일이 또다시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독일의 민간 싱크탱크인 이포(Ifo)의 한스 베르너 신 명예소장은 최근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해 이 같은 진단을 내놨다. 미국 이코노미스트와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서도 독일 경제 상황을 ‘유럽의 병자’에 빗대 설명하고 있다.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은 통일 비용에 허덕이면서 고질적인 실업난과 저성장 국면에 빠졌던 1998년 당시 독일 경제를 묘사하는 용어로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독일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가 살아나면서 유럽 최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세계 최대 산업 강국으로 주목받았던 독일이 ‘유럽의 병자’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으로 소환된 이유가 무엇일까.

독일은 올해 1분기 -0.1% 역성장한 데 이어 2분기 성장률은 0%에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올해 독일의 성장률을 -0.3%로 전망했다. 세계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역성장이 예상되는 국가로 지목된 것이다. 급격한 탈원전 정책이 화근이었다. 독일은 에너지 공급의 대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했다. 독일은 2035년까지 100%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목표로 세운 뒤 지난 4월 최종적으로 원전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러시아 가스 파이프라인을 믿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값 폭등을 초래했다. 전쟁 이후 러시아의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전기료, 천연가스료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올 2분기 에너지 순수입은 1991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공급 불안정에 따른 비용 급등에 독일 경제를 지탱하던 제조업도 비상이 걸렸다. ‘탈원전→ 에너지 가격 급등→ 제조업 타격→소비 침체’라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것이다. 독일 연립정부 내부에선 이제 다시 원전 재가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독일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명확하다. 친환경이라는 미명 아래 국가 지도자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이 국가 경제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이의 반대급부로 탈원전을 선택한 건 현실을 외면한 ‘이념적 선택’에 불과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도 독일처럼 아찔한 경험을 할 뻔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각계각층의 반대에도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당시 정부가 탈원전을 주장하며 벤치마킹 대상으로 제시했던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수십 년에 걸쳐 탈원전을 결정했지만 ‘5년짜리’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이를 강행했다. 다행히 지난 7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신한울 원전 2호기는 이르면 이달 말 시운전에 들어갈 전망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함께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이 드디어 속도를 냈다는 점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에너지 정책은 백년대계다. 향후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원전을 앞세운 에너지 정책은 이어져야 한다. 지속적인 에너지 정책 추진이라는 과제는 윤석열 정부에 주어진 또 다른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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