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에 차분한 일본[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3-09-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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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완 정치부 차장

“도쿄(東京)에선 수돗물 마셔도 돼요. 서울에선 안 마셔요?”

최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직장인 도모아키 하라(43) 씨가 시내에 있는 수돗물 음용 시설에서 물을 마시면서 한 말이다. 도쿄를 휴가지로 선택하면서 가장 우려한 것이 바로 수돗물이었는데, 하라 씨는 오염처리수가 방류되기 시작한 후쿠시마(福島)에서 불과 250㎞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매우 의연한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걱정스러웠다. 하라 씨는 “도쿄도는 평소처럼 수돗물을 믿고 안전히 마실 수 있음을 홍보하고 있다”며 “기준을 충족한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결정도 있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한국에선 ‘독극물 해양 투기’란 비판이 나온다고 하자,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인체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정부에서 수돗물 음용을 막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도쿄에선 하라 씨뿐만 아니라 수돗물을 마시는 현지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도쿄도청 45층에 있는 전망대에는 수돗물 음용 시설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수돗물을 마시는 현지인과 외국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앞서 도쿄 수돗물 음용률이 서울의 아리수보다 높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있었지만, 오염처리수 방류 후에도 수돗물 음용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본 수산시장의 분위기도 차분했다. 도쿄 수산물 공급의 메카인 쓰키지(築地)시장 입구에는 ‘모든 수산물은 안전검사 후 판매하고 있다’는 안내문과 함께 신선한 수산물을 구매하기 위한 방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처럼 방류수와 관련한 논란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일본 방송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 소식을 전하는 게 전부였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오염처리수가 위험하다면 직접적 피해를 보는 것은 일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물이 한반도 바다에 도착하려면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4∼5년이 걸린다. 반면, 일본 해역에선 방류수가 바로 섞인다. 정부 방침에 순응적인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자기와 가족의 생명을 위협할 사안에 희생할 국민은 세상에 없다. 그들이 오염처리수 방류를 받아들인 것은 과학을 근거로 한 ‘공적인 약속’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오염처리수 방류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위험 요소에 불안감을 느끼는 건 정상적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일본의 방류수 못지않게 걱정되는 것은 바로 우리 정치권에 만연한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민주주의)’다. 상대 정당과 정부를 무조건 반대해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정까지 마비시켜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독극물 유포’가 아닌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주도한 민경우 전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팀장은 “광우병은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시 야권에선 광우병이 창궐했던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송송 구멍탁’이 될 것이란 괴담을 퍼트렸다. 그때도 한국과 달리 미국은 차분했다. 최근 오염처리수 방류에도 국내 수산물 판매는 늘었다고 한다. 야권의 비(非)과학적 대국민 접근법의 수명이 다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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