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은 팜파탈 아닌 ‘스토킹 피해자’… “집착은 사랑이 아니야”

  • 문화일보
  • 입력 2023-09-19 09:00
  • 업데이트 2023-09-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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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카르멘’

오랫동안 팜파탈의 대명사로 여겨진 ‘카르멘’(사진)이 데이트폭력 희생자로 관객 앞에 섰다.

비제의 오페라로 익숙한 ‘카르멘’을 새롭게 해석한 서울시극단의 연극 ‘카르멘’ 무대로 연출가 고선웅은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1820년대 스페인 세비야의 부사관 ‘돈 호세’는 정숙한 약혼녀 ‘미카엘라’와 결혼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 ‘카르멘’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후 카르멘은 투우사 ‘에스까미오’와 사랑에 빠지고 돈 호세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한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원작 소설과 오페라에서 카르멘은 성적인 매력으로 무장해 남성을 홀리는 팜파탈로 피해자보단 원인 제공자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하지만 연극에선 카르멘을 스토킹 피해자로 묘사하고 ‘돈 호세’를 비운의 주인공인 아닌 가해자로 그려낸다. 오페라에서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인 뒤 “내가 카르멘을 죽였다”고 외치는 부분도 연극에선 “내가 카르멘을 가졌다”로 각색돼 집착의 광증을 보여준다.

또 원작과 달리 돈 호세의 약혼녀 미카엘라는 자살을 선택한다. 카르멘을 가질 수 없자 죽이는 것을 택한 돈 호세와 달리, 미카엘라는 돈 호세를 가질 수 없자 죽음을 택한다. 이 역시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은 이번 작품을 올리며 “카르멘의 명예회복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카르멘의 명예회복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미카엘라의 죽음은 불필요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자살함으로써 카르멘의 피해자 속성이 약화되고 오히려 악녀 속성이 강화됐다.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인 뒤 꽃 비가 내리는 장면도 작품의 메시지에 혼선을 준다. 고 연출은 상투적인 장치로 설명했지만 데이트 폭력을 미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공연은 오는 10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김병희가 돈 호세, 서지우가 카르멘, 최나라가 미카엘라, 강신구가 에스까미오를 맡았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
유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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