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피고인들에게 농락당하는 법정[포럼]

  • 문화일보
  • 입력 2023-09-19 11:35
프린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올해 초에 적발돼 구속기소된 이른바 제주간첩단(ㅎㄱㅎ), 창원간첩단(자주통일민중전위), 민주노총침투간첩단 사건 피고들이 이달 말부터 줄줄이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피고 측 변호인의 상투적인 재판 지연 전술과 이에 말려든 재판부 때문에 1심 구속기한(6개월)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통상, 간첩사건 등 국가안보 관련 재판은 집중심리 등을 통해 구속기한 내에 1심 재판을 마치는데 최근 재판부는 ‘세월아 네월아’식 공판을 진행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주간첩단(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의 경우 일당 4명 중 3명은 구속, 1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기소된 지 2년이 훨씬 지났지만 1심 판결이 언제 끝날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그사이 지난해 3월 피고 1명이 구속기한 만료로 석방된 데 이어, 5월엔 보석신청이 받아들여져 2명이 추가로 석방됐다. 그 결과 민주노총침투간첩단 중 1명이, 석방된 청주간첩단 사건 피고와 접촉해 관련 정보를 교환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청주간첩단 사건 피고들은 첫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변호인들은 두 차례나 재판부 기피 신청이 기각됐는데도 거듭 불복하며 대법원에까지 제기해, 최종 기각까지 210일이 걸렸다. 또, 재판 중에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며 공판 연기를 주장했다. 변호인들을 수시로 교체해 기록 열람·검토를 이유로 공판 재개를 방해하기도 했다. 검찰의 조속한 재판 진행 요구에도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변호인 측의 재판 지연술에 사실상 휘둘린다.

이런 일은 올해 초에 적발된 3건의 간첩단 사건 재판에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지난 3월 구속기소된 창원간첩단 사건 재판에서 변호인들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고, 불허되자 항고·재항고를 계속하며 5개월간 공판을 지연시켰다. 이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고 심지어 담당 판사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형사 고발하기도 했다. 최근엔 보석 신청으로 재판이 중지된 상태다. 제주간첩단과 민주노총침투간첩단 재판에서도 뻔히 기각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며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

사법 시스템이 간첩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의 재판 지연 전술에 이처럼 농락당하며 무력화하고 있다. 법 정의 실현을 위한 재판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관련 판사들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사법부에 묻고 싶다. 안보 파괴자 외에도 살인·강도·강간·사기 등 각종 흉악 범죄자들이 재판 지연 전술로 줄줄이 석방돼 거리를 활보하게 된다면 그게 사법정의 실현인가? 북한은 우리 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해 대대적인 간첩 공작을 다방면으로 확대하고 있다.

국가 사법 시스템의 무력화와 붕괴를 막기 위해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의 미비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특히, 간첩사건 등 안보 위해 사건에서 재판 지연 전술이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보사건의 집중심리 의무화, 구속기한 연장 의무 허용, 공판 정지 시 구속기한 미포함, 잦은 법관 기피 신청의 제한, 재판 중 위헌법률심판 신청의 제한 규정 등을 도입해 법정이 간첩 피고인들의 ‘사법 놀이터’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간첩사건 재판부의 인식 전환과 신속한 공판 진행이 절실하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