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측정 거부하고 경찰관 때렸는데…운전자가 ‘무죄’라니?

  • 문화일보
  • 입력 2023-10-0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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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법정 내부에 설치된 법원 상징물. 연합뉴스 자료 사진



인천지법 "음주 측정 요구가 위법…임의수사 거부하면 강제처분 절차 따랐어야"
현장 경찰들 "현행범 체포 요건 까다로운 점 고려해야" 토로



A(30) 씨는 지난해 8월 26일 승용차를 몰고 인천에 있는 집 주차장에 들어섰다. 자정에 가까운 늦은 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관들이 1층 필로티 주차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경찰관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며 A 씨에게 음주 감지기를 들이댔다. 당시 신고자는 "영종대교에서 빠져나온 차량이 라이터도 켜지 않고 비틀대며 운행한다"고 경찰에 알렸다. 경찰관들은 술 냄새가 나고 눈은 빨갛게 충혈된 A 씨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의심했다. 혀가 꼬여 발음이 부정확한 데다, 그의 차량은 주차선에 맞지 않게 세워진 상태였다. 경찰관들은 20분 동안 4차례나 음주 측정을 요구했으나 A 씨는 계속 거부했다.

그는 "(경찰관들이) 죄를 뒤집어씌운다"며 "이미 주차까지 했는데 음주 측정을 하는 건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주차장에서 나가려는 A 씨와 이를 막는 경찰관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B 경장을 밀쳤고, 또 다른 경찰관의 마스크를 잡아당기다가 얼굴을 손으로 치기도 했다. 이후 A 씨는 도로교통법상 음주 측정 거부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A 씨는 법정에서 "경찰관들이 음주 측정을 요구할 당시 음주운전을 했다고 볼 타당한 이유가 없었다"며 "음주 측정 요구가 (동의받고 하는) 임의수사 원칙에도 맞지 않아 위법했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경찰관들이 임의수사를 거부한 A 씨를 체포하지 않고 음주 측정을 요구한 행위는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인천지법 형사8단독 김지영 판사는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김 판사는 "당시 A 씨는 경찰관이 음주 측정을 요구하기 전에 임의수사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현했다"며 "경찰관은 음주 측정을 하기 전이나 그 과정에서 A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압수수색을 하는 등 수사상 강제처분을 하기 위한 형사소송법 절차를 따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음주 측정을 요구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음주 측정 요구가 위법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A 씨가 경찰관들을 폭행했다고 해도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임의수사를 거부한 운전자를 상대로 음주 측정을 하려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강제 수사를 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음주측정 거부 운전자를 현행범으로 검거할 수 있지만, 체포 요건이 까다로운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에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크다.

노기섭 기자
노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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