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여편 詩로 사랑을 노래… “한국 시단 어머니 같은 분”

  • 문화일보
  • 입력 2023-10-11 11:54
  • 업데이트 2023-10-1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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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남조 시인의 빈소. 마지막까지 시작 활동을 이어갔던 고인의 빈소엔 그를 기리는 추모와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 96세 ‘사랑의 시인’ 김남조 별세… 애도 줄이어

서울대 재학중 시 발표 등단
1953년 첫 시집 ‘목숨’출간
아흔 넘어서도 왕성한 활동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보며
‘참 좋다’고 하신 따뜻한 분”


한평생 사랑을 따뜻하게 노래한 ‘사랑의 시인’ 김남조 별세에 고인을 기리는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후배 시인들은 “한국 시단의 어머니 같은 분이 세상을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10일 저녁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는 후배 시인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이는 신달자 시인으로,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던 고인의 제자이자 등단 후에는 후배로서 고인과 가까이 지냈다. 신 시인은 11일 통화에서 “고인이 돌아가시기 이틀 전 병원에서 뵀다. 왠지 ‘이게 마지막인가’ 싶어 막 울었더니 선생님도 눈물을 흘리셨던 일이 떠오른다”며 “선생님은 사람과 자연, 그리고 노래를 좋아한 분이셨다. 사람들과 모임을 가질 때면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보며 ‘참 좋다’고 이야기하신 따뜻한 분”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문단의 거대한 시인이 떠나 안타깝고 애달프지만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산 김남조라는 시인이 우리에게 남긴 게 뭘까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인 유자효 시인은 “한국 시단의 ‘큰 별’이 졌다. 시인이자 교육자로서 작품 활동과 문단 생활의 모든 면에서 후배 시인들과 제자들의 큰 귀감이 되었던 한국 시단의 어머니 같은 분이 세상을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빈소엔 신 시인과 유 시인을 비롯해 김화영 문학평론가와 김호운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이 다녀갔다.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규슈여고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고인은 대학 재학 중인 1950년 연합신문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낸 뒤 ‘나무와 바람’ ‘사랑의 초서’ ‘동행’ ‘너를 위하여’ ‘저무는 날에’ 등을 냈으며 만해대상(2007년)과 은관문화훈장(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1993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88년) 등을 받았다. 1955년부터 38년 동안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시인협회장, 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 한국여성문인회 회장 등을 지냈다.

한평생 1000여 편의 시를 통해 시인이 노래한 것은 단연, 사랑이었다. 유명한 시 ‘편지’의 첫 구절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는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적 확인 문구로 쓰이며 젊은이들의 마음을 보듬었고, 시 ‘좋은 것’의 한 구절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에 걸려 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고인은 아흔이 넘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2020년 낸 19번째 시집 ‘사람아, 사람아’에서 고인은 “긴 세월 살고 나서 / 사랑 된다 사랑의 고백 무한정 된다는 / 이즈음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고인의 남편은 광화문광장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등을 작품으로 남긴 조각가 김세중으로, 지난 19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녕(김세중미술관 관장)·김석·김범(설치미술가) 씨, 딸 김정아 씨 등이 있다. 발인은 12일, 장지는 경기 양주 천주교청파묘원이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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