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눈물[박준우 특파원의 차이나인사이드]

  • 문화일보
  • 입력 2023-11-04 15:58
  • 업데이트 2023-11-04 15:59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일 중국 베이징의 한 지하철역 출입구 인근에서 시민들이 리커창 전 총리의 유해 운구행렬을 지켜보기 위해 연단에서 대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일 중국 추저우의 인민광장의 국기게양대 인근에 리커창 전 총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화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트위터 캡처



시민들, 술·고기 끊고 리 총리 애도
현 시스템으론 안된다며 눈물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집안 어르신의 상을 당해 한동안 술과 고기를 먹지 못했는데, 그 분을 보내드리고 첫 음주를 여러분과 함께하게 돼 기쁩니다”

2일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방문했던 한 중국인 가정에서 듣게 된 건배사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가 언급했던 ‘집안 어르신’은 실제 혈족이 아니라 이날 화장됐던 리커창(李克强) 전 국무원 총리다. 일면식도 없는 리 전 총리를 위해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도 잘 하지 않는 심상(心喪·본인의 혈족과 상관없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며 술과 고기를 삼가함)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리 전 총리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중국인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그가 일관되게 강조했던 개혁개방 노선이야말로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목소리를 높여가며 개혁개방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하던 그는 이내 눈시울이 불거지더니 눈물을 떨궜고, 저녁 식사에 초대됐던 다른 중국인들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내며 “중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라며 슬퍼했다.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던 집주인은 중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작은 잔을 내려놓고 분주기(바이주를 따라 놓는 개인 용기)째 술을 들이키면서 “지금 보이는 중국이 중국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외국 분들이 수천 년간 포용과 개방을 해왔던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흔히 ‘무색 무취’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은퇴했다는 리 전 총리지만 중국인들이 그에게 가졌던 호감과 애정은 예상 외로 컸다.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서서 큰 부패 스캔들 없이 중국을 이끄는 데 일조했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1인 체제가 강조되는 와중에서도 소신 발언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많은 지지를 보내고, 그의 쓸쓸했던 은퇴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미 중국 전역에서는 그를 애도하며 거리에 내어놓는 조화가 그의 사망 당일부터 끊이지 않고 있고, SNS 등에서도 그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가 장례 당일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평소 공개석상에서 리 총리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이를 찾아보기는 어려웠지만, 이날 저녁식사 중에 중년 남성들이 단체로 터뜨린 울음은 그 어떤 상황보다 중국인들이 느끼는 먹먹함과 답답함을 공감하게 해줬다.

이날 리 전 총리의 화장과 영결식은 비교적 조용히 치러졌다. 그의 운구 행렬 중 몇몇 사람들이 큰 소리로 항의를 하다 연행되거나 공안들에 의해 행동을 제지받긴 했지만, 감정이 격화된 중국인들의 집단행동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영결식에는 그의 정치적 멘토였던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은 참석하지 못했고, 한 때 그와 함께 공산당 지도부를 구성했던 현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가 지금의 현 지도부와 뜻을 같이 했던 인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드러내는 장례 절차로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외신들은 리 전 총리의 죽음이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나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죽음 때와 달리 그 공감과 애도의 분위기가 덜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쌓여가는 조화와 더불어 이날 확인할 수 있었던 중국 인민의 눈물은, 그들이 지금 상황을 마냥 좋게 바라보고 있지 않는다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박준우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