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감히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오[소설, 한국을 말하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1-13 09:26
  • 업데이트 2023-11-1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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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토끼도둑 작가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9월 4일부터 연재에 들어간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았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10) 김영민
현대적 삶과 예술 - 변기가 질주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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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이었고, 주식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환율은 요동쳤고, 감당하기 버거운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고백했다. 오랫동안 별러왔던 일이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나무 아래서 오랫동안 마음 두어 온 상대에게 고백하는 것. 사랑한다고, 오랫동안 사랑해왔으며, 더 오랫동안 사랑할 거라고. 단물이 다 빠져도 당신을 퉤 내뱉지 않겠다고, 입속의 금니처럼 간직하겠다고. 큰 나무 그늘 밑에서 입을 맞췄다. 사람들이 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어깨가 약간 떨렸던 것 같기도. 내 마음도 그만큼 떨렸던 것 같기도. “난생처음 키스하는 거예요.” 탄생의 비밀을 알려주듯 말했다. 그가 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생처음 키스하는 사람과 키스하는 건 난생처음이에요.”

이날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유는 그에게 키스하던 그 순간, 벌거벗은 남성이 무서운 속도로 내 옆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한 명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 우르르 지나갔다. 마치 껍질이 벗겨진 바나나 다발처럼. 벗은 남자 몸을 본 적이야 있었지만, 길가에서 나체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달리는 나체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떼 지어 달리는 나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매사에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하며 살아왔는데, 이번에는 그러기 어려웠다. 길가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13인의 어른이 벌거벗고 질주하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⑴

이들은 왜 벗고 질주하는 걸까. 달리기 동아리였던 걸까. 더웠던 걸까. 뭔가 입고 달리기에는 너무 더웠던 걸까. 더러웠던 걸까. 참고 있기에는 너무 더러웠던 걸까. 목욕탕으로 질주하고 있던 걸까. 옷을 입고 벗는 게 귀찮았던 걸까. 옷을 벗은 상태로 그냥 대중탕까지 질주하고 있던 걸까. 마지막 속옷을 당근에다 팔고 집으로 후다닥 돌아가고 있었던 걸까. 이 모든 게 아니라면, 그냥 폭력적이고 싶어졌던 걸까. 그냥 차분하게 미치는 데 실패한 걸까.

아니, 모든 게 정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상인답게 그냥 삶이 버거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삶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었는지 모른다. 인생 그 자체로부터 도망치는 중이었는지 모른다. 평생 쉬지 않고 먹이고 살려야 하는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었는지 모른다. 평생 달래주어야 하는 자아로부터 도망 중이었는지 모른다. 나를 돌보는 책임이 결국 나에게 있다는 준엄한 사실로부터 도망 중이었는지 모른다. 바보 같으니라고. 인생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다니까. 버거운 인생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하더라도, 도망 중인 인생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다. 도망 중인 인생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는 도망치기를 그만둬야 하는데, 그러면 버거운 인생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인생에 출구는 없다. 인생을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저들도 자기 인생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인생을 쫓아가고 있던 것이겠지. 누군가를 파멸시키고 있었던 중이겠지. 실제로 누군가 그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헉헉헉헉. 정갈한 양복을 입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거기 서라!” 벌거벗은 추적자가 소리쳤다. “싫다!” 옷 입은 도망자가 대꾸했다. “내놓아라!” 벌거벗은 바나나가 소리쳤다. “그럴 수 없다!” 옷 입은 도망자가 대꾸했다. 탁탁탁탁. 입은 자와 벗은 자의 거리는 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입은 자는 벗을 것이 있었고, 벗은 자는 벗을 것이 없었다. 입은 자는 잃을 것이 있었고, 벗은 자는 잃을 것이 없었다. 잃을 것이 있는 자는 빨리 움직일 수 없다. 입은 자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든 것은 변기였다. 그는 백자 달항아리처럼 희고 커다란 변기를 감싸 안고 도망치고 있었다. 혹시 변기를 달항아리로 착각한 걸까. 선비정신을 담은 값비싼 백자로 오인한 걸까. 아니, 그것은 변기였다. 그는 백색 소변기를 들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햇빛 찬연한 여름날 백색 변기를 들고 한 사내가 질주하오. 달항아리 같은 변기가 질주하오. 뒤샹 1917년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 ⑵의 변기가 질주하오.

식은땀을 흘리며 질주하오. 그 뒤를 한 떼의 벌거벗은 남자들이 질주하오. 13인의 벗은 어른들이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변기를 든 사내도 무섭다고 그리오.

무거운 변기를 든 사내는 이내 탈진하고 만다. 털썩 주저앉는 그 순간에도 그는 변기를 놓지 않는다. “안돼, 그것만은!” 사내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추격자들은 그로부터 변기를 뺏는다. “아, 안돼, 그것만은!” 벌거벗은 추격자가 차갑게 선언했다. “이것은 하나의 변기일 뿐이다.” 양복 입은 사내가 울부짖듯 외쳤다. “아니오! 이건 그냥 변기가 아니란 말이오! 이, 이건 예술품이오! 세계적인 예술품이오! 위대한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창조한 ‘샘’이라는 작품이오! 이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얼마나 큰돈을 썼는지 알기나 하오?”

“그래 봐야, 그것은 하나의 변기일 뿐이다.” 벌거벗은 사내가 차갑게 말했다. “뒤샹이 도대체 뭘 했나. 그가 한 일이라고는 변기를 구입한 다음, 서명한 게 전부다. 그 변기를 보겠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미술관으로 관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한갓 변기를 보기 위해! 변기를 예술품이라고 착각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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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은 도망자가 대꾸했다. “현대 예술이란 원래 그런 거요! 미술관에 가보시오. 얼핏 보기엔 어처구니없는 것들로 가득하오. 잡동사니 같은 것들… 그러나 그게 다 위대한 예술품이란 말이오.”

옷 벗은 추적자가 말했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거지. 누구나 임금님이 벌거벗은 줄 알고 있지만, 마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굴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이렇게 아이가 소리치기 전까지는. 누구나 이게 변기인 줄 알고 있으나, 변기가 아닌 것처럼 굴지. 오늘부로 선언한다. 이것은 하나의 변기일 뿐이다.”

“뒤샹 이전에는 누구도 기성품을 가져다가 예술이라고 부르지 못했소. 뒤샹은 기성품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처음으로 해낸 거요. 그래서 이 작품이 위대한 거요. 누구도 감히 하지 못했던 상상을 해내고 그것을 실천한 거요. 그게 바로 현대 예술의 핵심이오.”

“그런 짓거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도 집에서 쓰던 변기를 뽑아와 볼까. 우리 집 변기도 함께 진열해라. 그러면 네 놈을 놓아주겠다.”

“그렇지만 당신이 하기 전에 뒤샹이 이미 했지 않소? 예술가는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오. 당신 같은 인간들이나 예술품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라고 궁시렁거리지.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예술가가 아니란 말이오. 진정한 예술가는 그저 일을 저지를 뿐, ‘나도’라고 말하지 않소.”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해내야, 예술가란 말이냐.”

“그렇소. 모든 위대한 행위는 돌이켜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소. 그러나 누구도 감히 그 일을 저지르지 못할 때 처음으로 저지른 사람이 있소. 바로 그가 예술가요. 그런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창조적 담력이 있소.”

“다, 담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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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은 바로 그 담력에 대한 찬사요. 자, 들어보시오. 재래식 변소를 사용할 때 우리는 똥과 함께했소. 대소변을 볼 때마다 인간은 똥오줌을 싸는 존재라는 것을, 똥오줌과 더불어 산다는 걸 상기할 수밖에 없었지. 양변기를 사용하면서 인간은 자신이 똥오줌을 싸는 존재라는 사실을 쉽게 잊게 되었소. 물을 내리자마자 자신이 출산한 똥오줌이 순식간에 사라지니까. 이렇게 인간이 자신을 속이고 있었을 때, 뒤샹이 나타나 인간은 똥오줌을 낳는다는 것을 상기시킨 거요.”

“그런 개소리가 펴, 평론이라니.”

“평론이 있어야 작품이 인정받고, 인정받아야 미술관에 걸리게 되고, 미술관에 걸려야 누군가 보러 오고, 보러 와야 논문을 쓰고, 논문을 써야 학위를 받고, 학위를 받아야 취직이 잘되고, 취직이 되어야 번식도 잘되오. 번식이 되어야 주가도 오르고, 주가가 올라야 나 같은 사람도 미술관에서 일을 하게 된단 말이오. 이 모든 것을 위해 일단 작품이 있어야 하오.”

“작품이 필요하단 말이냐.”

벌거벗은 추적자들은 변기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렸다. 그리고 합창하듯 소리쳤다. “이것은 하나의 변기일 뿐이다.” 그리고 예식이라도 거행하듯, 일제히 그 변기를 향해 오줌 줄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오줌 줄기를 내뿜는 그들의 갈색 바나나 위로, 저기 저 잠자리 하나 살포시 내려앉는다.

(1) 이상, 오감도(烏瞰圖) 중 일부
(2) Henri Robert Marcel Duchamp(1887∼1968)은 남성용 소변기를 구입하여 ‘R. Mutt 1917’이라고 서명한 후 뉴욕의 전시에 출품한다. 그 작품의 전시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샘’이라는 이름의 그 변기는 현대미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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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 않기위해 쓰는 것이 소설이다”

■ 작가의 말


이상의 ‘오감도’에서 제목과 일부 문장, 또 지배적 이미지를 가져온 소설은 예술에 찬사를 보내다 조롱하고, 허상을 폭로하다 다시 위상을 세워준다. 오감도는 1934년 발표되자마자 난해하다는 비난에 연재가 중단됐으나, 한편으론 종래 시의 고정관념을 깨트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설에서 그 ‘파격’과 ‘담력’을 공유하는 건 마르셀 뒤샹의 변기, 그리고 얼마 전 관객이 작품을 먹어 소동이 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다. 김영민 작가는 “설명하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이 소설이다”라며 작품 해설엔 말을 아꼈다. 다만, ‘변기가 질주하오’가 왜 지금의 한국을 말하는 소설인지에 대해선 이렇게 전했다. “2023년 현재, 한국에서 미술은 예술 생태계의 우세종이 된 것 같아서, 과거에 문학이나 영화가 누렸던 영광을 이제 미술이 누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 김 작가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중국 정치 사상사’ ‘공부란 무엇인가’ 등을 펴냈으며 단편 ‘이것은 필멸자의 죽음일 뿐이다’ 발표 후 종종 소설을 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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