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 가네, 너무 빨리[살며 생각하며]

  • 문화일보
  • 입력 2023-11-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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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김창기정신과 원장, 그룹 ‘동물원’ 멤버

청춘이라고, 난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랑 때문에 노랠 만들었다

내게 아픔과 상처를 준 사람들
덕분에 저작권으로 돈을 번다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친구
그래서 우린 진심으로 사랑해


추위를 달래려 어깨를 움츠리고 국밥집엘 들어섰다. 내 또래 아저씨들이 낮술을 마시며 떠들어댄다. 어릴 적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 추위를 잘 탄다나. 청춘을 돌려달란다. 아름다웠단다. 그 시절 일화들을 나누며 박장대소한다. 나는 청춘을 돌려달라거나 청춘이 아름다웠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이 이상하거나 기억에 심한 왜곡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청춘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청춘은 늘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내가 겪은 것처럼 고통스럽진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게 되었으면 뭘 하나? 다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걸.

잠 안 자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다 잘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겨우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었고, 더 숨 막히는 고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첫 관문을 간신히 통과한, 조금 큰 도토리들 중에서 가장 작은 축이었다. 다들 왜 그렇게 똑똑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잘 생겼는지? 그 열등감….

청춘이라고, 사랑에 빠졌다. 내 얼굴과 성격도 생각지 못한 채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을 보고는 첫눈에 반한 것이다. 하지만 말을 걸 용기가 없어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도서관 2층 열람실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음성을 엿듣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벚꽃 잎이 흩어지던 어느 날 교내 ‘청송대(聽松臺)’에서였다. “○○아, 이 문듸 가시나야∼” 하고 그를 부르는 그의 친구 덕분이다.

○○! 조용히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나갈 즈음, 도서관을 들어가다가 입구에서 그와 마주쳤다. 여름방학이 되면 몇 개월 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두려움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 같다. 그의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너를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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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라고요?”

지금도 못 잊는, 그가 내게 선물한 첫마디다. 매몰찬 어투와 달리 그는 내 앞에서 머뭇거렸고, 나는 자판기 커피를 사주면서 한참을 떠들었다. 그런 용기가 내 안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 어느새 우린 그가 살던 여학생 기숙사 앞에 와 있었다….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변해가네’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했지만,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노래다. 내가 만든 노래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조금’ 기쁜 노래다.

나의 또 하나 짝사랑은 노래였다. 노래 역시 문제가 있었다. 내가 노래를 무지하게 못하고 기타도 잘 못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래를 만들었다. 매일 밤 악보 위에 ○○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면서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읊조리고 속삭이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내가 만든 노래들은 늘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노래들의 복제품이었다. 결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나만의 노래 하나를 쥐어짜 내려가다가 기타를 품에 안고 잠들고는 했다.

○○과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그는 소심하고 불안하고 구질구질한 나에게 지쳤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숨기고 싶던 나의 실체였다.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렇지만 나는 이후로도 한참을 그와의 시간과 그의 잔영 속에서 살았다. 어디서든 그의 모습이 보였고, 어디서든 그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나도 몰랐었다. 정말 한심했다.

그해 나는 낙제를 했다. 그리움과 열등감이 커질수록 슬픈 노래는 더 많이 흘러나왔다. ‘잊어야 한다면 잊어지면 좋겠다’고 외쳤지만, 그는 내 뇌리에 더 깊이 똬리를 틀었다. 죽을 용기도 없었고, 그저 한 번만 더 그를 보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인기 작곡가가 되었다.

다행히, 나만 그런 찌질이가 아니었다. 나중에 ‘동물원’ 멤버가 될 나의 친구들도 하나같이 나처럼 겁에 질리고 버림받은 ‘찌질이’들이었다. 어느 겨울, 우린 청량리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강릉으로 갔다, 겨울 바다에 우리의 희망과 분노를 고백하기 위해! 바다를 향해 고함을 질렀지만 후련해지긴커녕 더 답답해지기만 했다. 우리에게 제시되고 요구되는 미래를 벗어날 용기와 지혜가 없음을 느껴서였을까? 그래도 그때는 추위를 타진 않았다.

서울로 돌아오는데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저스트 더 웨이 유 아’가 흘러나왔다.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함께 씩 웃었다. 노래가 좋기도 했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린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받아들였고, 부둥켜안아 줬고, 그래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벌써 예순이다. 광석이만 엉뚱한 이유로 서른 조금 넘기고 가버렸다. 떠나간 ○○이와 광석이는 노래를 남겨주었고, 그들 덕분에 나는 저작권으로 돈을 번다.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이 내게 준 대가다. 하지만 난 그런 대가보다는 내 곁에 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뭐, 정말 곁에 있다 해도 지금 내 아내와 내 친구들과의 관계가 그러하듯 시들해졌겠지만…. 그런 청춘, 아름답지도 않았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밤이면 가끔은 그립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창기 김창기정신과 원장, 그룹 ‘동물원’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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