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예민하지 않은 尹[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2-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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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은 정치부 차장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밤 방송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에 대해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좀 문제라면 문제이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 여사가 정치 공작의 ‘피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 사안이 ‘몰카 공작’인 점, 선친과 인연을 내세운 사람을 만나게 된 이유 등을 설명하며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국민 우려를 끼친 데 대해 ‘송구하다’ 등의 표현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이에 더해 윤 대통령의 설명이 한참 늦은 점도 문제다. 의혹을 담은 영상은 2개월여 전인 지난해 11월 27일 공개됐다. 명품백을 건넸다는 특정인의 진술이 공개된 게 아니라, 영상 자체가 나와 이것만으로 어느 정도 팩트가 확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2개월 넘게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용산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실 침묵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악의적 정치 공작에 공식 대응하면, 그 자체로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사건을 키우고 싶은 세력들은 ‘대통령실 해명’을 먹잇감 삼아 또 다른 정치 공작을 벌일 것이라고 본 것이다. 또 하나는, 이 사안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김영란법 등 어떤 죄명으로도 의율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에 대통령실이 ‘무대응’이라는 고전적 네거티브 대응을 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국민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명품백 의혹 이후의 윤 대통령은 여론에 예민해져야 한다. 3김 정치의 한 축인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유권자는 사육사가 잠시 한눈을 팔면 물어뜯는 맹수와 같다”는 말을 했다. 국민을 맹수처럼 생각할 것까지는 없더라도, “여론이 잠잠해질 것이다.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다”는 순진한 기대는 접어야 한다. 오래 사귄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 내 마음을 알아주듯, 대통령도 죄송하거나 감사한 마음을 기자회견 등으로 국민에게 전해야 한다.

‘윤·한 관계’의 재정립을 바라는 여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 1월 29일 오찬 회동 직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과 저와의 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다”는 말을 했다. ‘갈등 해소의 무대’에서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이다. 한 위원장은 ‘서천 화재 현장’에서는 윤 대통령에게 굳이 ‘폴더 인사’를 했다. 여론을 선점할 수 있다면, 카메라가 즐비한 무대를 예민한 감성으로 넉넉히 활용하는 게 한 위원장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한 위원장과 공천이라는 큰 파도를 지혜롭게 넘어야 한다. 사천(私薦), 당무 개입이라는 말이 더는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4월 총선 이후도 문제다.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면, 한 위원장에게 급격하게 힘이 쏠린다. 패배하면,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책임만이 크게 부각된다. 결과가 어떻든, ‘차기 권력’의 너무 빠른 등장으로 윤 대통령의 공간이 제약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여의도에서는 “‘대통령의 정치력’이 처음으로 시험대에 올랐다”는 말이 나온다. 여론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총선 이후에도 민생을 챙기며, 미래권력과 지혜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대통령은 이 시험대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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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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