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꼭 데려오셔야 해요!”… 돈은 많고 추위가 싫은 의뢰인을 위해[소설, 한국을 말하다2]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6 09:01
  • 업데이트 2024-02-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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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토끼도둑 작가



■(2) 손원평
오픈런 - 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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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선 행렬의 끝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영하 9도. 기후 위기에 전 세계적 전염병이 더해진 서울의 어느 가을 아침 풍경은 가히 소리 없는 전투를 방불케 했다. 모두들 추위 속에 내뿜는 입김이 뜨거운 증기처럼 사납게 퍼져나갔다.

수민은 당당히 그 줄의 일곱 번째에 자리하고 있었다. 애매했다. 뒤로 끝없이 이어진 줄을 보면 분명 선두에 속한 건 맞는데 안정권은 아니었다. 곰처럼 두텁게 껴입고 핫팩으로 무장을 했지만 새벽 두 시부터 여덟 시간째 야외에 서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옷 안으로 파고드는 엄혹한 냉기에 오한이 났다. 손이 시려워 휴대폰을 잡을 수도 없어서, 온갖 상념이 스쳐 지나가고 더는 떠올릴 게 없어진 머릿속으로 구구단까지 외며 시간을 때웠다. 자신보다 값어치 있는 물건을 얻기 위해 시간과 육체를 쓴다는 사실이 이보다 더 실감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아직까진 로봇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에 만족해야 하나? 현재 시각 10시 28분. 진정한 승부는 2분 후 시작된다. 수민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경기 직전의 선수처럼 가볍게 발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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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휩쓴 세상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했다. 한쪽에선 경기가 어렵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왔지만 어떤 이들에겐 느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주식시장은 10년 만의 호황기를 맞았고 가상화폐로 재미를 본 사람들은 더 좋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건물까지 사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대박을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안정적인 회사에서 잠자코 월급쟁이 신분을 유지하는 이들 역시 위기에 대한 체감은 크지 않았다. 가장 운이 없는 건 수민 같은 부류였다. 그러니까, 하필 코로나 직전에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꿈을 찾아 몸을 날린 경우 말이다. 따지고 보면 소박한 꿈이었다. 그동안 성실하게 모은 돈으로 여행을 하고 늘 꿈꿔왔던 작은 가게를 차리기에 더없이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 꿈은 절망의 씨앗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절망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맘대로 해외에 나가지 못하고 맘껏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을 뜻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해외로 나가는 발길이 묶이고, 가시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자랑거리들에 제한이 걸리자 명품 시장은 보복 소비라는 말 아래 날로 비대해졌다. 보복 소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수민은 그 말을 만든 사람에게 보복하고 싶었다. 보복할 게 없어서 돈으로 뭔가를 보복하다니, 이보다 더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분명히 실재했다.

타인의 화려함을 바라보며 가라앉는 기분의 끝이 어디인지 확인이라도 하듯 명품거래 사이트를 들락거리던 수민은 재미난 알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명품숍에 들어가기 위해 새벽부터 백화점 앞 대기 줄의 선두에 서서 구매를 대행해주는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원하시는 제품 무조건 가능. 수민이 큰 기대 없이 올린 글에 전화를 걸어온 의뢰인의 목소리는 젊다 못해 어렸다. 원하는 가방의 제품명과 상세사항을 말하던 의뢰인이 통화의 말미에 붙인 말은 간절했다.

“그 아이, 정말 꼭 데려오셔야 해요!”

수민은 알겠다고 했다. 세상엔 여러 종류의 간절함이 있는 법이니까. 그리하여 돈은 많고 시간은 없으며 추위가 싫은 의뢰인을 위해 돈은 없고 시간은 많고 추위는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수민이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다.

폰의 위성 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키자마자 거대한 성문이 열리듯 백화점 문이 개방됐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작은 포효 소리가 진짜인지 착각인지 헷갈렸다. 언제였더라. 이런 함성을 영화 속에서도 본 기억이 분명히 있었는데. 근육질의 미국 남자 배우가 아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였다. 매진된 인기 장난감을 사기 위한 부모의 사활을 그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따뜻한 가족애였다. 수민의 처지에 비하면 몹시 사치스러운 주제였다. 이건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일렬로 입장한 사람들의 대열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다. 이제부터는 달리기 실력과 정보의 전쟁이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사람, 비상구 문을 열고 등장하는 사람, 백화점과 연결된 통로에서 뛰어 내려오는 사람 등등, 거대한 먹이를 향하는 개미떼처럼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수민은 필사의 힘을 다해 미리 숙지한 동선을 달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매장에 들어섰다.

수민은 헐떡거리는 숨을 진정시키며 손에 낀 반지가 잘 보이도록 괜히 머리카락 끝을 쓸어내렸다. 의뢰인이 어젯밤 친히 퀵으로 보내온 신용카드에 동봉된 반지였다. 되도록 잘 보이게 껴 주세요. 어쩌다 들른 뜨내기가 아니라 브랜드에 애정을 비춰온 충성 고객이라는 걸 증명해야 하니까요. 수민은 의뢰인의 메시지를 상기하며 자신에겐 조금 헐거운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수민의 옆으로 따라붙은 직원이 물었다.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수민이 상품명을 말하자 직원이 먼 곳을 보더니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딱 하나 있기는 한데, 저분이 먼저 가져가셨네요.”

다른 직원이 금색 머리핀을 한 여자에게 가방을 건네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걸 보자 수민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눈앞에서 사냥감이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듯 말 그대로 속이 쓰렸다. 목숨 걸고 잡아 와야 하는 사냥감을 놓쳤다. 몇 개의 숫자들이 허망하게 사라졌다. 이달의 방세와 휴대폰비를 채워줄 숫자들. 수민은 하는 수 없이 의뢰인이 차선으로 말한 제품의 이름을 댔으나 그것 역시 재고가 없었다. 몇 개의 숫자들이 더 사라졌다. 밥값과 최소한의 과일을 사 먹을 돈. 이러다간 아무것도 얻게 되지 못할 확률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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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어딘가에 존재하신다면 제발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죠. 수민이 협박하듯 속으로 뇌까린 순간 신은 긍휼히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의 신분증을 감추는 방식으로 말이다.

“신분증 없으시면 곤란하세요.”

직원의 단호한 말에 금색 머리핀 여자가 새된 소리를 냈다.

“분명히 갖고 왔는데 없어졌다니까요. 그냥 해주세요, 저 여기서 한두 번 산 게 아닌데.”

“규정이라서요.”

간결한 직원의 말투는 근엄하기까지 했다. 여자는 태세를 바꾸더니 허둥지둥 말을 이었다.

“그럼 잠깐 맡아두시는 동안 다른 신분증 가져오는 건요? 코앞이라 바로 올 수 있는데. 아, 저 여권 사진 스캔본 있어요! 그건 안 되나요?”

“실물 신분증만 가능하세요. 대기는 처음부터 다시 서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아……. 오늘 대기가 이미 마감됐네요.”

직원이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입소리를 냈다. 이 순간, 이 공간에서만큼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직원, 아니 절대권력의 셀러님이 물건을 내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었다. 결국 여자는 울상을 지으며 물러섰다. 수민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 옆을 딱 지키고 서 있다가 여자가 걸음을 떼자마자 입을 열었다.

“저요!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이미 수민의 손엔 준비된 신분증과 의뢰인의 신용카드가 들려 있었다. 직원이 자비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저 멀리 도망갔던 숫자들이 서둘러 수민의 앞으로 줄지어 달려오고 있었다. 방세와 휴대폰 요금, 식재료와 과일, 금값 같은 딸기를 먹을 수 있는 숭고한 숫자들이.

그렇게 해서 수민은 의뢰인이 원했던 ‘그 아이’를 고이 모시고 나왔다. 매장 밖 벽에 기대 수민은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보냈다.

성공했습니다.

금장인가요??????????

수민은 의뢰인의 문자에 달린 물음표의 개수를 세는 대신 천천히 입력했다.

맞습니다. 금장.

의뢰인이 하늘을 나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한 시간 후 수민은 의뢰인의 집 앞에서 그녀에게 가방을 건넸다. 그렇게 해서 건네받은 돈으로 자잘한 여러 가지를 해결했다. 정확히 말하면 잠시간의 생활을 이어나갈 연료를 채워 넣었다. 다시 구멍이 나고 메꿔야 하는 돈이었지만 적어도 돈을 받을 때만큼은 보람 있었다.

그러나 수민의 기묘한 알바 생활은 오래가지 않아 끊겼다. 명품에 웃돈을 얹어 파는 리셀 제품의 수가 늘자 매장 측은 신분증과 명의가 같은 신용카드만 받기 시작했고 한 사람이 일년간 살 수 있는 제품 수에 제한을 두었다. 이제는 시간과 몸을 갈아넣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린 것이다.

몇 달 뒤 수민은 한 중고거래 앱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자신이 지불했던 돈보다 정확히 250만 원이 더 비싼 금액으로 올라온 그 아이는 사진 속에서 또렷하고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안주머니 두 시 방향에 미세하게 난 흠집을 수민은 명명백백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수민은 한 계절 전보다 조금 더 굽은 목을 모니터 가까이 들이밀어 그 아이를 빤히 바라봤다. 딱 한 번 품에 안았던 그 아이. 시간을 견디고 추위에 몸을 닳아가며 데려온 그 아이. 날이 갈수록 몸값이 높아져만 가는 그 아이. 모든 면에서 자신과 반대지점에 서 있는, 다시는 만져보지 못할 그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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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서 명품은 자기 수준 드러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

■ 작가의 말


‘오픈런’은 지금 한국의 소비문화를 보여주는 키워드다.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명품이라는 의식이 팽배한 것 같아요.” 소설 ‘그 아이’에서 오픈런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낸 손원평 작가는 유독 한국에서 ‘명품 오픈런’이 유행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수민’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추운 겨울 아침, 누군가의 ‘오픈런’을 대신한다. 부탁받은 가방, ‘그 아이’를 데려와야 하기 때문.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다. 창업을 하겠다며 호기롭게 퇴사했는데,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 궁지에 몰린 수민에겐 꽤 짭짤한 일감. 다들 어렵다는데, 한쪽에선 돈을 못 써 아우성이다. 해외에 나가지 못해 백화점에서 ‘보복 소비’를 하는 의뢰인들 덕에 수민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손 작가는 “코로나를 통과하며 오픈런의 개념이 확대됐다”고 했다. “카페나 빵집 등 소소한 곳에서도 볼 수 있지요. 이제 오픈런은 SNS를 통한 ‘전시 가능한 체험’이 된 것 같습니다.”

■ 손 작가는

1979년생. 2016년 등단 후 ‘아몬드’ ‘서른의 반격’ 등을 썼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일본 서점대상 등 수상.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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