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찌개를 듬뿍 떠먹으며 다짐하듯 말했다… 내일은 세 배로 운동해야지[소설, 한국을 말하다2]

  • 문화일보
  • 입력 2024-05-13 09:03
  • 업데이트 2024-05-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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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변영근 작가



■ (12) 최진영

식단 - 삶은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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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른 살 생일을 맞아 금연을 결심했고 서른세 살 생일인 오늘까지 그 결심을 지키고 있다. 일주일에 딱 두 번,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만 술을 마시겠다는 다짐 또한 대체로 지켰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는 -친구나 동료에게 힘든 일이 생겨서 같이 술을 마셔야만 한다거나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권하는 술을 거절할 수 없을 때- 소주 세 잔까지만 마시려고 나름 애를 썼다. 그러니까 그는 적어도 자기가 겪는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마시진 않았다. 오늘 식당 앞에서 만났을 때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시트러스 향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향기가 참 좋네. 조깅 후 샤워를 하고 나왔다고 그는 대답했다.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아 김치찌개 2인분을 주문한 뒤 그는 나에게 핸드폰 건강앱을 보여줬다. 매일 저녁 8시에서 10시 사이에 빨간 막대가 높게 솟아 있었다. 퇴근 후 근린공원의 조깅 트랙을 적어도 열 바퀴 이상 달리는 습관을 들였다고, 달리기를 못 한 다음 날에는 평소의 두 배를 달린다고 그는 말했다. 일 년 가까이 운동을 지속하니까 확실히 기본 체력이 다져지는 것 같다고, 영양제만 많이 챙겨 먹을 게 아니라 일상의 루틴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몸의 근육이 생기니까 마음의 근육도 덩달아 강해져서 예전처럼 쉽게 짜증을 내는 일도 줄었다고 이어 말했다. 기본 반찬으로 나온 미역줄기 볶음을 조금 집어 먹으며 나는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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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운동 좋지.

반찬 중에는 연두부도 있었다. 그것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나는 덧붙였다.

지금처럼만 계속 살잖아? 그럼 너는 백이십 살까지 살 거야.

그는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오래 살 생각은 못 해봤는데.

지금 백세시대 말하는 사람들 봐. 환갑 넘어서 그런 얘기 하잖아. 너는 이제 삼십대니까 환갑 넘었을 때는 평균 수명이 더 높아질 거라고. 넌 이제 네 인생의 일사분기를 산 거나 다름없어.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전골냄비를 들고 와 휴대용 버너에 올려두고 가스를 점화하며 말했다. 다 익힌 거니까 끓어오르면 바로 드시면 돼요. 돌아서려는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메뉴에 계란찜이나 계란말이 있나요?

계란말이 있어요.

그럼 그것도 하나 주세요.

김치찌개는 금방 끓었다. 그는 국자를 들고 김치와 두부와 고기를 적당량 건져서 내 몫의 그릇에 담아준 뒤 자기 그릇을 채웠다. 나는 버너의 불을 줄이며 한탄하듯 말했다. 너는 참 변함없이 친절하다. 그는 웃으며 대꾸했다. 성격이지, 뭐. 나는 그의 그런 면을 좋아했다. 지나친 겸양이나 자기 과시가 없는 담백함. 친절이 타고난 성격이란 걸 일찌감치 눈치채서 다행이었다. 나에 대한 호감이라고 오해했다면 고백했을 테고 지금처럼 적당히 친한 사이로 지낼 수는 없었겠지. 쌀밥을 한 숟가락 떠먹은 뒤 그가 말했다.

그럼 환갑까지 살아야 인생 절반 산 건가. 그때 난 뭐 하고 있을까.

나는 김치와 두부 위주로 먹으며 되물었다.

뭐 하고 있으면 좋겠어?

그때에도 우리가 이런 걸 먹을 수 있을까?

그가 쌀밥을 가리키며 물었다.

왜, 기후위기 때문에?

아, 그 생각은 못 했네. 일단 건강 때문에. 난 세상에서 쌀밥이 제일 맛있거든. 근데 벌써부터 마음껏 못 먹으니까.

왜 못 먹어?

혈당 때문에.

당뇨 있어?

아직은 아닌데 가족력도 있고, 젊을 때부터 관리하는 게 좋다고 해서.

근데 너 지금은 엄청 잘 먹고 있는데?

생일이잖아.

아…… 그래서 여기 오자고 했구나.

응. 이 조합.

축복을 내리듯 두 손바닥을 펼쳐서 김치찌개와 쌀밥을 전체적으로 가리키며 그는 말을 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합이거든. 사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하는데.

소주?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셔. 생일인데.

아냐. 술까지 마시면 내일 너무 후회할 것 같아. 죄책감에 빠지고.

나한테 힘든 일 있다 치고 딱 세 잔만 마셔. 내가 고민 털어놓을게.

계란말이가 담긴 접시를 놓아두고 돌아서려는 직원에게 소주 한 병만 달라고 청했다. 금세 소주와 소주잔이 놓였다. 우리는 각자 소주잔을 채우고 가볍게 부딪혔다. 반 넘게 비워진 그의 밥그릇을 보고 밥을 더 시킬 거면 내 몫을 먹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밥에 숟가락도 대지 않았다고.

그러게, 누나는 왜 밥을 안 먹어?

그가 내 밥그릇을 보며 물었다. 바로 그게 내 고민이라고 중얼거리며 밥그릇을 건네자 그는 스스럼없이 받았다. 밥과 찌개를 듬뿍 떠먹으며 그는 다짐하듯 말했다. 내일은 세 배로 운동해야지.

그럼 평소에는 잡곡밥 먹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탄수화물 자체를 안 먹어. 아침은 ABC주스랑 삶은 계란 먹고 점심은 단백질 도시락.

저녁은?

간헐적 단식.

안 먹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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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탄수화물 먹으면 다음 날 몸이 너무 무거워. 나는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그를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너 무슨 대회 준비해?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잖아. 나는 소주를 한 모금 마시며 오래전 그에게 고백하지 않은 이유를 다시금 떠올렸다. 친절이 타고난 성격이란 것과 함께 눈치챘던 사실이 하나 더 있지. 우리는 뭐랄까, 생활의 중력이 다르다는 것. 직접 만들든 배달을 시키든 어쨌든 그는 매일 ABC주스와 단백질 도시락을 먹고 퇴근 후 조깅할 여유가 있다. 눈을 뜨자마자 공복에 각종 영양제를 집어삼킨 뒤 한 시간 반 동안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점심시간에는 팀의 실세가 먹자고 하는 음식을 따라 먹거나 혼자 샌드위치로 때우고 잠깐 눈을 붙이는 나와는 일상의 배경 자체가 다른 사람이다. 야근한 뒤 집에 오면 조깅이나 운동은커녕 샤워조차 버거운데 그래도 배는 고프니까 야식을 시켜먹고 위에 음식물을 가득 담은 채로 잠드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으로 고생하는 나와는 삶의 패턴이 다른 사람. 회사 근처에 살면서 대개 일정한 시간에 퇴근하는 그는 각종 영양제를 ‘때려 넣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일은 세 배로 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와 연애하는 상상을 하면 울적해진다.

근데 누나는 왜 밥을 안 먹어? 다이어트해?

내 몫의 밥을 가득 떠먹으며 그가 다시 물었다. 그와 다르지 않은 이유, 그러나 자세히 따져보면 완전히 다른 이유로 나는 밥을 못 먹고 있다. 얼마 전부터 몸이 안 좋아서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혈당 스파이크 같다는 셀프 진단을 내렸다. 탄수화물과 당분 함량이 높은 음식을 줄이라는 글을 보고 배고플 때 초콜릿이나 빵 대신 편의점에서 파는 삶은 계란을 사 먹었더니 조금은 괜찮아진 것도 같다. 병원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매일 다짐하지만 하루하루는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고…… 확연하게 드러나는 상처나 증상이 아니니까 자꾸 미루게 된다. 이러다 독감에라도 걸리면 그제야 병원에 가서 호소하겠지. 선생님, 요즘 너무 어지러워요. 밥을 안 먹으면 기운이 없고 밥을 먹으면 너무 피곤해요.

생일에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왜 나를 만나려는 거냐고, 지난주 약속을 잡을 때 물어봤다. 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애들 만나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 3차까지는 가야 자리가 끝날 텐데 이젠 그런 거 부담스러워. 누나 만나서 좋아하는 음식 먹고 깔끔하게 끝내고 싶어. 그는 먼저 당부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케이크 같은 거 절대 사오지 마. 나 이제 그런 거 안 먹으니까. 그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한 적이 없고 나는 그의 말을 의심해본 적 없으니 우린 정말 깔끔한 사이로구나. 생일을 맞아 부담 없는 사람을 만나 좋아하는 음식을 원 없이 먹고 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인터넷 검색창을 열고 ‘간헐적 단식’을 검색했다. 가장 상단에 최신 기사가 떴다. 헤드라인은 ‘간헐적 단식이 심혈관 질환 사망률 오히려 크게 높인다’ 그에게 기사를 보여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핸드폰 액정을 꺼버렸다. 그래도 오늘은 생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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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관리·운동 흔한 풍경이지만 누군가에겐 사치”

■ 작가의 말

건강, 식단, 운동 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증가하고, 이와 관련한 콘텐츠도 넘쳐난다. 최진영 작가의 ‘삶은 계란’은 ‘같은 듯 다른’ 두 인물을 통해 이러한 세태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최 작가는 “‘제대로 갖춰진 식단’과 ‘건강을 위한 운동’에는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면서 “정보가 많아질수록, 건강하지 않은 이유가 개인의 탓이 되는 것만 같다”고 꼬집었다. “그건 과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과 다르지 않죠.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삶의 여유도 생기길 바라봅니다.”

식단 관리를 하고, 운동에 시간을 할애하는 풍경이 모두에게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바빠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누군가는 가족을 챙기느라 식단을 관리할 여력이 없다. 최 작가는 “행복한 삶의 필요조건에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좀 허탈하다”라고 말했다. 소설 속 ‘나’는 최 작가를 닮았다. 건강을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애주가. “술은 ‘줄여야 하는데’라고 매일 생각하면서 그럴 수 없는 ‘길티플레저’이죠. 요즘 각종 비타민을 챙겨 먹고 있어요. 오랫동안 꾸준히 술을 마시기 위해서임을 부정할 수가 없네요.(웃음)”

■ 최진영 작가는

1981년생. 2006년 등단 후 ‘구의 증명’ ‘단 한 사람’ 등을 썼다. 이상문학상 대상, 한겨레문학상 등 수상.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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