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끼 버릇되면 내일은 못버텨”… 빵 1개로 버티는 노인들[밥 굶는 노인들]

  • 문화일보
  • 입력 2024-06-13 12:06
  • 업데이트 2024-06-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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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팍팍한 노년의 삶…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각사에서 무료 급식을 받으려 줄을 선 노인들 옆으로 한 폐지 줍는 노인이 리어카를 끌며 지나가고 있다. 윤성호 기자



■ 밥 굶는 노인들 <上> 노인빈곤의 민낯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 전망 속
전국결식노인 15만7804명 달해
숨은 노인까지 발굴땐 20만 넘어

고물가에 무료급식소 몰리지만
예산부족 지자체 수요 못따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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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끼 먹어 버릇하면 그다음 날 힘들어서 안 돼….”

기초생활수급자인 김모(75) 씨는 기자가 저녁으로 대접하겠다는 만 원짜리 갈비탕을 한참 머뭇거리다 끝내 거절했다. 매일 먹는 비빔밥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한번 위장이 늘어나면 그다음 날이 더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씨는 식당이 붐비지 않아 눈치가 덜 보이고, 저녁을 거르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인 오후 2시쯤 늦은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어르신 동행 식당’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구청에서 지급받은 무료 급식 카드의 일주일 한도는 4만 원. 김 씨는 1끼 8000원씩 5끼로 정하고, 급식 카드를 쓸 수 있는 식당에서 ‘1일 1식’을 한다.

내년 초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무료 급식이나 도시락을 지원받고 있는 ‘결식노인’이 전국적으로 약 1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고, 독거노인이 약 400만 명에 달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기도 하다.

13일 문화일보가 전국 17개 시·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전국 결식노인은 15만7804명에 달한다. 각 지자체는 보건복지부의 ‘결식 우려 노인 무료급식 지원 계획’에 따라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식사를 거를 우려가 있는 노인들(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저소득층 등)에게 경로 식당에서 무료 급식을 주거나 도시락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사업 대상자는 지역별로 △서울 3만1688명 △경기 3만2880명 △강원 8804명 △충북 3935명 △충남 1만1920명 △경북 1만1460명 △경남 3329명 △전남 9742명 △전북 6121명 △제주 2082명 △세종 305명 등이다. 서울의 경우 2015년 2만2459명에서 지난해 3만1688명으로 9년 사이 40%나 증가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암수’까지 고려하면 2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결식노인들의 식생활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엉망이었다. 김 씨는 고령이지만 의도적인 1일 1식을 한다. 수입은 생계급여 등 60만 원이 전부다. 이 중 월세 40만 원을 빼고 나면 20만 원이 남는다. 고물가 시대, 장을 봐 음식을 해 먹는 것은 김 씨에게 사치와 같다. 평일엔 무료 급식으로, 주말엔 주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건강했을 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기도 했지만, 혈압약까지 챙겨 먹어야 할 만큼 몸 상태가 악화하면서 그조차 여의치 않아졌다고 한다. 김 씨는 “몸에 기운이 없어 밥을 못 먹게 됐는지, 밥을 못 먹어서 몸에 기운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같은 처지인 송모(67) 씨 역시 평일엔 무료 급식을 이용하고, 주말엔 마트에서 대량으로 파는 1000원짜리 크림빵 등으로 배를 채운다. 경제적으로 최빈곤층인 송 씨는 현관문도 없는 4평 남짓한 집에서 십수 년을 혼자서 살고 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를 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을 만큼 좁고, 가스 배관이 전부 썩어 보일러가 망가져 겨울엔 극심한 추위에 떨어야 한다. 젊었을 적 길거리에서 떡볶이 노점상을 하다 망가진 기관지와 시력 탓에 아르바이트를 뛰어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도 무리다.

밥 굶는 노인 대부분은 돌봐줄 가족이 없는 1인 가구로 ‘정서적 빈곤’에도 시달리고 있다. 남편과 20여 년 전 이혼했다는 송 씨에게는 자식도 없다. 정신장애가 있는 남편이 지난해 세상을 떠나면서 김 씨도 독거노인이 됐다.

매일 아침 서울 종로구 원각사의 무료급식소를 찾는다는 이모(81) 씨도 “자식이 있지만 1년에 2∼3번, 명절 때나 전화 한 통으로 연락하는 게 전부”라며 “어쩌다 통화를 해도 할 말이 없어 서로 힘든 게 느껴지는데, 자식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생각에 미안함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통계에 따르면 60대 이상이 세대주인 1인 세대는 약 385만 명으로, 전체 세대의 40% 수준이다.

치솟는 물가는 노인 빈곤을 더 심화시킨다. 무료 급식 사업에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고 있는 이유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결식 우려 노인들을 대상으로 지정된 식당에서 무료 식사 바우처를 쓸 수 있는 어르신 동행 식당 사업을 시작했지만, 대상이 되는 구는 동작구·영등포구 등 4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OECD가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소득빈곤율은 40.4%로 가입국 중 1위를 차지했다.

한 지자체 어르신정책과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꾸준히 결식 우려 어르신을 발굴하곤 있지만, 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로 모두에게 지원해줄 순 없는 상황”이라며 “예비 대상자로 이름만 올려놓은 어르신들이 점점 늘어나는 적체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수한·김린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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