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을 독점하지 못할때 오는 고통… ‘질투’ 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문화일보
  • 입력 2024-06-14 09:07
  • 업데이트 2024-06-1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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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바티칸 시국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15세기 화가 보티첼리의 ‘모세의 젊은 시절(The Youth of Moses)’.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등장인물 스완은 이 그림 가운데 있는 시포라(모세의 부인)를 떠올리며 오데트와 사랑에 빠진다.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48) 사랑과 질투

스피노자 “혐오감” 질투 묘사
프루스트는 “사랑의 그림자”
고통의 감정 생생하게 그려

사랑에 눈 멀면 ‘이성’ 마비
‘질투’ 몰입하는 정념 노예로

자신에 오는 손실 안따지고
죽음도 숭고하다 여기게 돼


사랑에 빠진 이는 질투도 한다. 질투는 달콤한 연애를 간지럽히는 장난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불길이 무섭도록 거세다. 질투를 다루고 있는 탁월한 예술 작품들은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서 주인공은 질투에 휩싸여 아내를 살해한다. 뷔히너의 희곡 ‘보이체크’에서 주인공인 가난한 군인 역시 질투를 이기지 못해 연인을 살해한다.

그런데 이런 강력한 질투는 누구는 가질 수도 있고 누구는 안 가질 수도 있는 우연한 기질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에 속한다. 그래서 질투를 해명하는 일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간학’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질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고 있는 이를 지성사에서 꼽자면 철학자 스피노자와 소설가 프루스트일 것이다. 스피노자의 대표작 ‘에티카’(윤리학)는 매우 건조한 내용과 문장들로 이루어진 책인데, 질투만은 마치 경험한 듯 생생하게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자가 타인에게 몸을 주는 것을 표상하는 사람은 자기의 충동이 억제되기 때문에 슬픔을 느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의 심상을 타인의 치부 및 분비물과 결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혐오감을 느낄 것이다.”(황태연 역)

자신의 연인이 다른 자의 성기와 분비물에 노출돼 있는 것을 ‘상상’하며 그는 질투 속에 괴로워한다.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정서를 다루고 있는 ‘에티카’의 이 부분을 프루스트의 구절들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마치 스피노자의 제자처럼 프루스트는, 다른 남자와 은밀히 즐거움을 나누고 있는 연인에 대한 상상 때문에 괴로워하는 남자를 위 구절처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 남자는 사교계의 총아 스완이다. 이 매력적인 남자가 겪는 질투의 고통으로 가득 찬 사랑 이야기가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중요한 대목 가운데 하나인 ‘스완의 사랑’이다. 인간 마음의 가장 미세한 움직임까지 추적하고 있는 이 이야기에서 프루스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의 질투는 그의 사랑의 그림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 밤 그녀가 그에게 보낸 새로운 미소, 그렇지만 지금은 반대로 스완을 비웃고 다른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흐르는 미소와 기울어진 머리,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입술들을 향해 기울어진 머리와, 전에 그에게 보여 주었던 애정 표현, 그렇지만 이제는 다른 남자에게 주는 온갖 애정 표현들로 채워졌다. 그녀 집에서 가지고 온 모든 관능적인 추억은, 마치 실내장식가가 보여 주는 숱한 스케치나 ‘설계도’처럼,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취할 것 같은 그 타오르는 듯한, 정신을 잃은 듯한 자세를 스완에게 생각나게 해주었다.”(김희영 역)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보티첼리의 ‘봄(Primavera)’. 스완은 이 그림에 등장하는 꽃의 여신 복장과 비슷한 꽃무늬 가운을 오데트에게 선물한다. 우피치 미술관 소장



읽어보면 마치, 스피노자의 문장에 살을 붙여 부정한 애욕을 더욱 뜨겁고 선명하게 그린 듯하다. 대부분의 인간은 평생 동안 못해도 한 번쯤 누군가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달콤한 사랑에는 혜성의 긴 꼬리처럼 고통스러운 질투가 따라붙기 일쑤다. 질투는 그것이 현실적인 질투건 잠재적인 질투건, 프루스트의 말처럼 사랑에 흔히 따라붙는 “사랑의 그림자”인 것이다. 내 사랑에 무심한 상대방이 다른 이와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 때 질투의 고통이 밀려든다. 또 연인의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대해서 질투심을 가지는 경우마저 있다.

왜 사람은 질투의 고통에 빠져드는 걸까? 당연히 독점하고 싶은 사랑하는 이를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독점을 전제한다. 만일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했는데 친구로 지내자는 답변이 돌아온다면, 그것은 호의로 우정을 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너는 나를 독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프루스트가 쓰고 있는 다음 문장은 스완의 고통이 연인을 독점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려준다. “그녀가 그곳 호텔에서 모든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그녀도 그들을 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모든 남자가 오데트의 애인이 될 수 있는데 어떻게 염세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도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원하는데, 다른 이의 개입으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질투의 고통에 빠져든다. 이런 고통을 겪는 사람에 대해 스피노자는 쓰고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늘 보여준 것 같은 표정의 환영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의 시선은 그를 지나쳐 이미 다른 이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질투를 동반하는 사랑은 너무 괴롭지 않은가? 질투로 속을 가득 채운 사랑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만들기도 하며, 심지어 죽음에까지도 이를 수 있게 한다. 그런 맥락에서 프루스트는 질투라는 무서운 병균에 감염된 스완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쓴다. “스완의 사랑이라는 이 병은…그와 하나를 이루었기 때문에, 스완 자신을 거의 전부 파괴하지 않고는 그로부터 제거할 수 없었다. 외과의사 말대로 그의 병은 더 이상 수술할 수 없는 병이었다.”

스피노자는 이런 사랑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그 무서움이란 사랑이라는 정념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라는 흔히 쓰는 표현에서 과연 눈이 먼 것은 무엇일까? 바로 정념의 지배를 이겨내고 사리 분별을 하는 능력인 이성이다. 스피노자가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눈이 작동을 멈추고 정념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적 분별을 통해 자신을 정념의 노예로 만드는 저 사랑으로부터 탈출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그 방식은 이럴 것이다. 내가 사랑한 그 또는 그녀는 신비한 특별함으로 나를 매혹시켰지만,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니 신비하달 것도 없고 단점도 적지 않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자신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념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지독한 사랑에 빠진 이는 질투로 괴로워하면서도 저 이성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길을 걷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이성을 질투에 더욱 몰입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 일쑤다. 다시 프루스트 소설 속 스완에게로 가보자. 질투 속에서 그는 모종의 “지적인 즐거움”을 발견한다. “지금 그의 질투가 소생시킨 것은 학구적이었던 젊은 시절의 또 다른 재능, 진실에 대한 열정이었다.” 진실에 대한 이 열정이란 다름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에게 숨겨둔 애인이 있지 않은지 밝혀내고자 하는 열정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밝혀낼까’ 연구하는데 자신의 이성을 사용한다. 연인의 집 창문 엿보기, 연인이 다른 남자에게 보낸 편지의 봉투를 뜯지 않고 내용을 엿볼 방법 궁리하기 등등. 아마도 편지가 사라진 오늘날엔 저 진실에 대한 열정은 연인의 카톡을 몰래 열어볼 길을 찾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질병이 교양을 갖춘 총명하고 매력적인 신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질투의 문제를 경유하여 우리가 도달하는 궁극적인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고통스러운 사랑에 빠진 이는 그 사랑으로부터 탈출하기를 원할까?’ 그는 이 사랑을 대체하는 다른 어떤 정서로도 옮겨가고 싶어 하지 않으며 이 사랑 말고 다른 구원을 원하지도 않는다. 사랑에 중독되는 일은 알코올중독이나 니코틴중독과는 다르다. 극심하게 괴로운 사랑에 빠져 있을지라도 이 사랑중독자는 자신의 상태를 질병이나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어쩌면 이 사랑 속에서 죽는 일을 숭고하고 선한 일로 여길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죽음을 바라보는 타인들도 탄식은 할지언정 약물중독자에게 하듯 손가락질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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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끝을 맺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알려주듯 사랑은 대체 불능의 것이다. 사랑의 주인공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졸데가 부르는 노래 ‘사랑의 죽음(Liebestod)’으로 끝을 맺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지옥 같은 파멸이 아니라 사랑 자체의 완성을 본다. 자신에게 닥치는 손실에 대한 모든 계산을 넘어선 것, 한마디로, 죽어도 좋은 것, 이게 사랑 같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 본문 중 언급된 책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의 대표작 ‘에티카’(윤리학)는 근대 철학의 고전으로서 고대 이래 철학 안에 누적된 신(神)에 대한 그릇된 사유를 바로잡는 혁명적 작품이다. 프랑스 소설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간 심리, 사회 계급의 변화, 시간과 관련된 철학적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끈질긴 묘사가 낳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만연체의 문장, 소설 형식상의 다양한 실험 등등 역시 이 소설이 주는 빛나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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