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비극적 연극에 담은… 한 영웅을 위한 ‘환희의 선율’[이 남자의 클래식]

  • 문화일보
  • 입력 2024-06-20 09:22
  • 업데이트 2024-06-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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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투쟁과 승리의 서사적 구현
베토벤 특유의 긴장과 응축
강렬한 카타르시스로 가득차
넓은의미로 현재의 영화음악


1809년 베토벤은 빈의 부르크 극장으로부터 연극 ‘에그몬트’를 위한 부수음악의 작곡을 의뢰받는다. 부수음악(incidental music)이란 연극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음악으로 넓은 의미로는 지금의 영화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단한 독서광이자 괴테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던 베토벤은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미 괴테의 시에 음악을 붙여 가곡을 작곡한 바 있는 베토벤이었지만 ‘에그몬트’ 의뢰는 그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괴테가 12년에 걸쳐 완성한 5막의 비극적 연극 ‘에그몬트’는 투쟁 끝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애국심으로 가득 찬 한 영웅의 이야기로, 베토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서사인 ‘고통을 넘어 환희로(Durch leiden zur freude)’ 나아가는 투쟁과 승리의 음악적 문법을 구현하기에 이상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괴테가 쓴 ‘에그몬트’는 네덜란드 태생의 에그몬트 백작(Lamoral, Count of Egmont 1522∼1568)이 주인공이다. 네덜란드를 이끌던 에그몬트는 스페인의 압제에 대항해 항거하지만 알바 공작에게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의 애인인 클레르헨은 에그몬트를 구하려 사력을 다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채 끝내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제 에그몬트마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단두대 앞의 에그몬트는 깊은 졸음과 함께 환영을 보게 된다. 다름 아닌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애인 클레르헨이었다. 그녀는 에그몬트의 삶과 투쟁, 그리고 의로운 죽음을 축복해 준다. 환영에서 깨어난 에그몬트는 죽음이 결코 서글픈 스러짐이 아닌 의로움으로 도달한 값진 승리와 자유임을 깨닫고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1809년 작품의 수락과 함께 곧장 작업에 착수한 베토벤은 서곡, 클레르헨의 노래, 간주곡, 종곡인 승리의 교향곡 등 총 10개의 곡을 1810년 5월에 완성한다. 작품은 한 영웅을 상징하는 비장한 서곡으로 시작해 그의 삶과 투쟁을 묘사하며 단두대 앞에 섰을 때 연주되는 종곡인 ‘승리의 교향곡’까지 베토벤 특유의 긴장과 응축, 강렬한 폭발의 카타르시스로 가득 차 있다.

베토벤은 1810년 8월 21일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오직 괴테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에그몬트’를 작곡했습니다”라고 밝혔지만 정작 괴테와는 만난 적이 없었다. 1812년 7월 지금의 체코 지방인 오스트리아의 온천 도시 테플리츠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두 거장은 마침내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당시 베토벤의 나이 42세였고, 괴테는 그보다 21세 연상인 63세였다. 두 사람은 그곳에 일주일간 머무르며 시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함께 연주하기도 했으며 때론 침묵의 산책을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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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두 사람은 산책 중에 맞은편에서 왕족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자 괴테는 곧장 길 한편으로 물러나 허리를 깊이 숙이며 왕족에 대한 예를 갖췄는데, 베토벤은 왕족에 대한 예는커녕 오히려 뒷짐을 진 채 당당히 제 갈 길을 재촉했다. 이날의 사건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은 다신 이어지지 않았다. 괴테는 베토벤의 모자란 사회성과 존경심 결여를 마뜩잖아했고 베토벤은 자신의 눈에 ‘길든 예술가’처럼 비쳤던 괴테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에그몬트 서곡, 작품 84

1809년 작곡에 착수해 1810년 5월에 완성했으며 같은 해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됐다. 베토벤 중기의 마지막 걸작으로 베토벤을 대표하는 강렬한 인상의 서곡 작품이다. 한 영웅의 등장을 상징하듯 ‘파’ 음을 길게 연주하며 시작하는 도입부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어 고난을 연상하게 하는 목관악기의 구슬픈 선율이 이어지지만, 음악은 이내 활기를 되찾고 승리와 환희를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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